서학개미(해외 주식 투자를 하는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행처럼 퍼져 개인 투자자들이 많이 사는 ‘밈(meme) 주식’에 대거 몰린 것으로 집계됐다. 구글·아마존 등 이름 있는 종목들보다도 더 많이 사고팔았다. 주가가 반짝 오르는 밈 주식 특성에 기대를 걸고 단타 수익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15일 한국예탁결제원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대표적인 밈 주식으로 분류되는 베드배스앤드비욘드(Bed Bath & Beyond, 이하 BB&B)가 지난 한 달간 서학개미들이 가장 많이 매수한 미국 상장 종목(ETF 제외) 4위에 올랐다. 매수 금액이 1억5800만달러(약 2200억원)에 달했다. 테슬라(1조3200억원), 애플(3800억원), 엔비디아(3400억원) 바로 다음 순위였다. 구글(1600억원), 마이크로소프트(1200억원), 아마존(1000억원)보다 많이 산 것이다. 매도 금액을 포함한 전체 거래 금액으로도 BB&B(4400억원)가 4위였다.
◇한 달간 밈 주식 3600억원 산 서학개미
밈 주식 선호는 순매수 금액 기준으로 하면 더 두드러진다. 밈 주식으로 간주되는 영화관 체인 AMC엔터테인먼트(이하 AMC)는 이 기간 순매수금 550억원으로 서학개미가 산 전체 미국 주식 종목 중 1위를 기록했다. AMC는 매수금액 기준으로도 6위(1400억원)에 올랐다. 같은 기간 코스피 시장과 비교하면, 카카오페이(530억원)나 현대중공업(450억원)보다도 순매수 규모가 컸다.
밈 주식은 실적과 무관하게 시장에서 화제를 일으키면서 하루아침에 뜨고 지는 미국식 테마주에 가깝다. 밈 주식 열풍은 작년 1월 비디오게임 유통업체 게임스톱 등을 둘러싸고 개인 투자자와 공매도 세력인 헤지펀드 사이에 공방전이 벌어지며 시작됐다. ‘주가를 끌어내리는 공매도에 맞서야 한다’는 온라인 여론을 등에 업고 개인들이 집중 매수전을 벌이면서 게임스톱 주가는 3주 만에 2000% 가까이 올랐다. 그 뒤로는 밈 주식으로 분류된 종목과 연관되기만 해도 새로운 밈 주식으로 떴다.
BB&B도 마찬가지다. BB&B는 원래 미국 생활용품 소매점 체인인데, 지난달 ‘밈 주식의 대부’로 통하는 게임스톱 회장 라이언 코언이 이 회사 주가 상승에 베팅하는 ‘콜 옵션’을 대거 샀다는 소식에 하루 만에 주가가 29% 급등했다. 그러나 며칠 뒤 코언이 지분을 매각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주가는 40% 이상 폭락했다. 최근 주가는 지난달 최고가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다. 작년부터 밈 주식으로 분류된 AMC도 지난달 밈 투자자를 일컫는 ‘APE(원숭이)’란 명칭으로 우선주를 발행하겠다고 발표하자 주가가 60% 이상 뛰었다가 내렸다.
◇전문가들 “한 방 노렸다가 ‘새드 엔딩’ 볼 수 있어”
전문가들은 “밈 주식에 목돈을 투자하면 자칫 낭패를 볼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밈 종목 주가는 기업의 실적과 연관 없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은데, 악재로 여겨지는 일이 발생하면 주가가 순식간에 폭락해 손도 써보지 못하고 큰돈을 날릴 수 있다는 것이다. 황병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특히 최근 밈 주식 돌풍은 올 상반기 역대급 하락장에 위축됐다가 7~8월 반등세에 자신감을 찾은 미국의 개인 투자자들이 특정 종목을 띄우며 ‘한 방’을 노리는 측면이 크다”며 “국내 투자자가 여기 뛰어든다면 미국 개미들의 장단에 춤추다 넘어져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 증시는 국내와 달리 ‘하루 30%’ 상·하한선 개념이 없기 때문에 국내 테마주보다 등락폭이 더 커 위험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밈 주식 관련 뉴스가 미국 시간대에 맞춰 나올 가능성이 커서, 서학개미는 말 그대로 잠자다 날벼락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일각에선 밈 주식을 띄우는 것은 사실 개미가 아니라 배후의 헤지펀드라는 분석도 나온다”며 “‘해피 엔딩’을 바라고 뛰어들었다가 작전주에 당하는 ‘새드 엔딩’으로 끝날 수 있다”고 말했다.
☞밈(meme) 주식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에서 소문을 타고 유행이 된 주식 종목을 말한다. 밈(meme)은 사회에서 문화를 전파시키는 매개체를 의미하는데, 요즘에는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는 사진이나 영상, 유행어 등을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