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홀딩스는 지난 8월 12일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 261만주를 소각한다고 발표했다. 소각되는 주식은 발행주식의 3% 수준으로, 금액으로는 6700억원에 달했다. 포스코가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꼽히는 자사주 소각에 나선 것은 2004년 이후 18년 만이었다. 주식 소각 결정 직후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최근 반등을 시도하고 있는 철강 업황과 함께 포스코홀딩스의 주주환원 정책은 주가에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공교롭게 자사주 소각 발표 이후 포스코 주가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하반기 들어 시작된 베어마켓랠리(약세장에서 주가가 오르는 현상)가 오래가지 못한 데다, 태풍 힌남노가 포스코 포항제철소를 강타하면서 170만t에 달하는 생산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8월 12일 25만9500원까지 올랐던 주가는 현재 22만9000원으로 12% 떨어졌다.
◇올해 코스피 상장사 자사주 소각 ‘32건’ 역대 최대
올해 자사주 소각을 결정한 기업은 포스코홀딩스뿐만이 아니다. 2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전날까지 코스피 상장사가 공시한 자사주 소각은 총 32건에 달한다. 작년 한 해 동안 공시된 자사주 소각 건수(20건)를 이미 넘어섰고, 2001년 국내 증시에 자사주 소각 제도가 도입된 후 역대 최대였던 2020년(32건)과 같은 수준이다. 코스닥 상장사까지 합치면 올해 자사주 소각 공시는 50건인데, 올해 남은 기간을 감안하면 역대 최대치(2020년·55건)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자사주 소각은 기업이 가진 주식을 시장에 내다 팔지 않고 없애는 것이다. 소각하는 자사주만큼 주식 수가 줄어들게 된다. 기업의 시장 가치를 의미하는 시가총액이 자사주 소각 전후 그대로 유지되면 주당 가격은 오르게 되기 때문에 주주들에게는 유리한 조치다.
강소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사주 소각은 주주들에게 영구적인 배당 효과를 가져온다고 볼 수 있다”며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실증 분석한 결과에서도 자사주를 소각하는 경우 주가 상승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급격한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 우려 확산은 자사주 소각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도 통하지 않게 했다. 전 세계적인 증시 하락장에서 기업들의 ‘자사주 소각’이라는 호재성 재료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홀딩스 외에도 올해 대규모 자사주 소각을 결정한 기업들은 공시 이후 줄줄이 주가가 하락했다.
◇금호석유, 자사주 소각 발표 후 일주일 만에 12%↓
지난 20일 발행주식의 3.2%에 달하는 1500억원 규모 자사주를 소각하기로 공시한 금호석유의 경우 발표 후 일주일 만에 주가가 12% 급락했다. 무엇보다 발표 후 5거래일 연속 주가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락했다. 자사주 소각이라는 호재가 불투명한 업황으로 인한 실적 하향세라는 악재를 넘기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조현렬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금호석유의 주요 제품 수익성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어 3분기 실적은 증권가 예상보다 크게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며 “아시아 지역 화학제품에 대한 수요 약세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익에 대한 기대치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대모비스도 지난 7일 708억원 규모 자사주를 소각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이달 초 주가에 호재가 될 만한 조치를 잇따라 발표했다. 하지만 현재 현대모비스 주가는 19만9500원으로, 자사주 소각 공시 당일 주가(21만7000원)보다 8%가량 하락한 상태다.
이처럼 증시 하락 장에서는 자사주 소각의 ‘약발’이 나타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자사주 소각이 약세장에서 주가를 끌어올리지는 못하더라도 주가 하락세를 방어하는 데는 유효한 수단”이라고 지적한다. 자사주 소각이 없었다면 주가가 더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도 기업들에 적극적인 자사주 소각을 유도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자본 시장 현안을 논의하는 간담회에서 “기업들의 자기주식이 주주 가치 제고에 대한 투자자의 기대에 부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증권가에서는 대주주들이 지배력 강화를 위해 자기주식을 활용하기보다 자사주 소각을 통해 주주 가치를 높이도록 유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