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부터 1년 동안 코스피 지수가 30% 가까이 폭락했지만, 국내 증권사들이 쏟아낸 4300여 건의 리포트(주식 종목 보고서) 중에 “주식을 파는 게 좋겠다”고 추천한 매도 보고서는 단 3건밖에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반대로 “주식이 오를 테니 사라”는 매수 추천 비율은 90%가 넘었다. 주식 전문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코스피 시가총액이 하루 평균 2조원 넘게 증발하는 하락장 속에서 투자자들에게 “오른다, 사라”고 외친 셈이다.
12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작년 7월부터 올 6월까지 1년간 국내 증권사 32곳이 발간한 주식 종목 보고서 총 4344건 가운데 매도 의견을 낸 것은 3건(0.07%)에 불과했다. 이 기간은 2020년 동학개미 열풍을 부른 ‘코로나 특수’가 점점 꺼지고, 국내외 금리 상승과 경기 침체 우려로 시장이 줄곧 쪼그라들던 시기다. 코스피·코스닥 지수가 각각 29.2%, 27.6% 떨어졌다. 그런데도 매수를 추천한 리포트가 4004건(92.2%)으로 절대다수였다. 중립 의견은 337건(7.8%)이었다.
증권사의 말을 듣고 실제 주식을 산 개미들은 어떻게 됐을까. 강 의원실 집계에 따르면, 보고서에 적힌 ‘장밋빛 전망’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자기자본 기준 업계 1·2위인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올 1월 매수를 추천한 종목 87건(중복 포함) 중, 지난 9월 말 기준 목표 주가 이상을 달성한 경우는 하나도 없었다. 적중률이 사실상 ‘제로(0)%’였던 것이다. 개미 투자자들로서는 “증권사 보고서를 어떻게 믿겠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두 증권사는 모두 지난 1월에 삼성전자를 매수 추천했는데, 목표 주가가 각각 8만4000원, 10만5000원이었다. 하지만 12일 마감한 삼성전자 주가는 5만5800원이다. 목표치의 53~66%에 불과하다. ‘적중’은 언감생심이고 주가의 등락 여부조차 제대로 맞히지 못했다.
증권사 보고서는 왜 이렇게 현실과 동떨어진 ‘낙관론 일색’일까.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증권사가 ‘잠재적 고객’인 각 기업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각 증권사는 기업의 인수합병(M&A), 기업공개(IPO) 등을 주관하는 투자은행(IB) 업무를 겸업하고 있는데, 만약 특정 기업에 부정적인 ‘매도 리포트’를 낼 경우 고객을 잃을 수 있는 ‘을(乙)’의 위치라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메릴린치 등 외국계 증권사는 달랐다. 같은 기간 외국계 증권사가 낸 보고서 2만5000여 건(글로벌 종목 포함) 중에 매도 추천 건수는 3420건(13.5%)이었다. 매수(55%)·중립(32%) 의견 비율보다 적긴 하지만 0.1%도 안 되는 국내 증권사보다는 훨씬 많았다. 외국계도 기업의 압박을 받긴 하지만, 글로벌 증권사인 만큼 회사의 입김에 좌지우지되진 않는다는 것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매도 보고서가 드물다 보니 과도하게 이목이 집중되는 문제도 발생한다”며 “매도 추천하기가 점점 더 부담스러워지는 악순환”이라고 했다. 이렇다 보니 업계에선 ‘중립’ 의견을 ‘사실상 매도’ 의견으로 보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강병원 의원은 “해외처럼 독립 리서치를 활성화하거나, ‘매도 의견’ 비율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권고하는 등 더욱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