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급등이 한국 경제의 핫 이슈로 떠올라 현장 전문가를 만나보기로 했다. 환율 현장은 외환을 사고 파는 트레이딩 룸이다. 외환 트레이더들 가운데 경륜이 있는 사람을 찾았더니 업계 사람들이 미국 금융회사인 ‘뱅크 오브 아메리카(BofA)’ 서울지점의 임현욱 공동대표(50)를 추천했다.
지난 9월 28일 오후 3시 27분. 외환시장 마감 3분전.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36 서울파이낸스 빌딩 28층에 들어서니 다른 직원들 속에서 숫자와 그래프가 가득한 커다란 모니터를 보고 있던 임 대표가 자리에서 걸어나와 트레이딩 룸과 떨어진 별도의 방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시장 마감까지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다시 나갔다. 이어 장 마감을 알리는 카운트다운 목소리가 들렸다.
‘3, 2, 1, 땡.’
30초 뒤에 임 대표가 방으로 다시 들어왔다. 방문 유리 부분에 옛날 한옥 방문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 격자가 있었다. 남쪽 창 밖으로는 무지개처럼 층층으로 겹쳐 있는 구름 아래, 가까이 짙푸른 남산과 멀리 옅푸른 관악산이 보였다. 대화가 시작됐다.
외환 트레이더 생활 25년
—금융계에 몸 담은지 얼마나 됐나?
“외환위기가 발발한 이듬해인 1998년에 코오롱 상사에 입사해 국제금융부에서 외환시장을 처음 접했다. 코오롱 상사 입장에서 외환을 사고 팔았다. 2년을 거기서 근무하다 보니 트레이딩(거래)이 너무 재미 있었다.
외환거래를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어서 은행간 거래 시장으로 가기로 했다. 그래서 한국산업은행에 신입행원으로 지원해 다시 들어갔다. 그 때부터 3년반 동안 한국산업은행 자금거래실에서 원화와 달러를 사고 파는 거래를 했다. 이후 유럽계 은행 서울지점에서 외환거래 팀장을 하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이후 외환 트레이더의 길을 25년째 걸어오고 있다.”
—외환 거래 외에 다른 업무를 한 적은?
“유럽계 은행에서 외환 거래와 동시에 2년 미만의 단기 이자율 거래를 한 적이 있다. 이후 싱가포르로 발령받아 아시아통화의 외환거래와 스왑거래를 했었다.”
— ‘뱅크 오브 아메리카’ 서울지점 공동대표로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한국에서 은행과 증권회사로 나뉘어져 있다. 나는 은행의 공동 대표로서 대외적으로 뱅크 오브 아메리카 서울지점을 공동으로 대표한다. 내부적으로는 채권, 이자율 거래, 외환거래를 담당하는 부문(FICC팀)을 책임지고 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미국에서 주로 개인들에게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해주는 소매 전문 은행으로 알려져 있는데,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면?
뱅크 오브 아메리카 컨트리 CEO(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는 신진욱 한국총괄 대표가 잠시 방에 들렀다가 이 질문에 답변을 했다.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개인금융을 하는 은행 중 하나인 것은 맞는다. 하지만 은행의 전통적인 대출과 자금관리 업무뿐 아니라, 증권에서 주식중개, 리서치, 기업금융 등 다양하고 폭넓은 업무를 하고 있다.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소매금융만 하는 회사가 아니라, 기관과 기업고객을 대상으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세계 3위 안에 드는 글로벌 금융그룹이다. 시가총액 규모로는 전세계 투자은행 중에 2위에 해당한다.
한국에서도 대상 고객군을 더 넓혀가고 있다. 특히 올해 기업 인수합병(M&A)과 자본시장 관련 점유율은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고객은 기업과 외국 펀드
다시 임 대표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인터뷰의 주제가 환율 급등이지만 환율 거래의 구조를 알아야 환율 변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먼저 환율이 결정되는 구조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외환을 사거나 팔아달라고 요청하는 고객은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
“국내 고객으로는 대기업, 중소기업, 금융회사들이 있다. 서울에 지점을 둔 외국의 다국적 회사들도 고객이다. 해외 고객으로는 외국계 펀드, 자산운용사, 국부펀드들이다.”
—고객의 주문을 받으면 어떤 방식으로 달러를 사거나 파나?
“예를 들어 A 고객이 우리 은행의 영업팀에게 1000만 달러를 팔아달라고 전화나 블룸버그 메신저를 통해 주문을 낸다고 하자. 영업팀은 우리 트레이딩 팀과 같은 사무실 공간 내에 붙어 있다. 주문을 받은 영업팀원이 메신저를 통해, 혹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트레이딩 팀원에게 ‘10개 sell(매도)’이라고 말한다. 1개는 100만달러를 의미하니 1000만 달러를 팔아달라는 뜻이다.
트레이더마다 데스크 매니저의 감독 하에 각각 담당하는 상품이 있다. 현물환 거래, 통화스왑 거래, 채권 거래 등이다. 영업팀이 현물환을 팔아 달라는 주문을 내면 현물환 담당자가 원·달러 환율의 시장가격을 알려준다. 그러면 영업팀에서 고객에게 체결 가격을 전달한다. 만약 고객이 좀 더 높은 환율에 매도를 하고 싶으면 주문을 낼 때 특정 가격에 매도 주문을 낸다. 그러면 고객, 영업팀, 외환 트레이더가 계속 시장 가격, 주문 가격, 부분 체결 여부 등 상황 정보를 주고 받으며 거래가 끝날 때까지 대화를 이어간다.”
임 대표는 원화와 달러 간의 환율을 이야기 할 때 국제금융시장의 관례에 따라 달러를 앞에 두는 달러·원 환율이라는 용어를 썼다. 달러 중심 용어이다. 하지만 독자들에게는 원·달러 환율이라는 용어가 더 익숙하기 때문에 원·달러로 바꿔 적는다.
트레이더가 돈 버는 법
—거래가 체결되면 트레이더가 얻는 수익은?
“엄격히 말하면 트레이더가 아니라 영업팀이 고객으로부터 약정된 거래 마진(수수료)을 얻는다. 고객이 요청하는 이러한 거래와 별도로, 트레이더는 고객의 미래 수요와 환율 방향을 예측해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적절한 포지션(inventories)을 구축하면서 외환을 사거나 판다.
자본주의 시장은 정부나 감독기관이 일정한 가격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시장 참여자들이 서로의 생각(view)에 따라 사거나 파는 와중에 가격이 결정된다. 그 때문에 자유변동 환율제도를 택하고 있는 미국이나 한국 등에서는 때때로 시장가격이 실물경제의 흐름과 달리 지나치게 높아지거나 지나치게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외환 트레이더들의 생각에 따라 외환 시장이 급변동하면서 환율이 불안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인가?
“….”
—트레이더가 이익을 내는 과정을 좀 더 상세히 설명하면?
“트레이더가 1439.5(1달러에 1439.5원)에 1억달러를 사서 보유하고 있는 롱(long) 포지션이 생겼다고 하자. 트레이더는 이 달러를 1439.5원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팔아야 이익을 본다. 그러면 어디에서 팔까? 두가지 방법이 있다.
첫번째는 국내 양대 현물 중개회사인 서울외국환중개와 한국자금중개의 현물 단말기에 접속해 팔자 주문을 내는 방식이다. 이 단말기는 기획재정부의 승인을 얻어 외환거래를 할 수 있는 국내 은행, 국내 외국계 은행, 국내 증권사가 들어올 수 있다. 기업이나 개인은 사용하지 않는다. 한국은 하루 100억달러 정도의 현물환이 이 시장에서 거래된다. 유동성이 좋은 편이다. 계약 체결 이틀 뒤에 현물을 서로 주고 받는다.”
역외 선물환 시장
—두번째 방법은?
“한국 외의 역외에서 거래를 할 수도 있다. 주로 역외에서 이머징 마켓(신흥시장국) 통화는 계약 체결 후 한 달 뒤에 결제가 되면서 차액만 달러로 계산되어 입금 혹은 출금되는 1개월물 역외 차액선물환(Non-Deliverable Forward, NDF) 거래로 이뤄진다. 원·달러 환율은 역내와 역외간 거래가 자유롭기 때문에 국내 은행들도 역외에서 역외 중개회사를 통해 원·달러 거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해외 은행들은 역외 중개회사 뿐만 아니라 주로 미국의 글로벌거래 전문업체인 CME그룹이 운영하는 EBS(Electronic Broking System) 네트워크도 이용한다. 전세계 은행들이 모여 전세계의 모든 통화를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인데, 이곳에서도 원·달러 역외 차액선물환 거래를 할 수 있다. 1개월물 원·달러 역외 차액선물환은 하루에 30억달러 어치 정도 거래된다. 계약 체결후 이틀 후에 정산하는 스팟(spot, 현물거래) 환율과 1개월 뒤에 정산하는 1개월물 역외 차액선물환 사이에는 스왑포인트(swap point)가 존재한다.”
—스왑포인트가 무엇인가?
“현물 환율과 선물 환율 간의 가격 차이로, 두 통화의 이자율 차이를 환율로 표시한 것이다. 스왑포인트는 현물 환율과 두 통화의 금리차, 그리고 해당계약 기간을 곱해서 산출한다.”
—매우 어려운 개념인 것 같다. 사례를 들어서 쉽게 설명하면?
“예를 들어 현재 미국 기준금리는 한국 기준금리보다 높은 상황인데, 지금 달러를 팔고 원화를 매수하는 현물환 매도 거래를 하고, 미래 날짜에 달러를 사고 원화를 파는 선물환 매수 거래를 동시에 한다고 하자. 트레이더는 고금리 통화인 달러를 먼저 주고 만기까지 저금리 통화인 원화를 보유하고 있다가 미래 만기일에 달러를 받고 원화를 주게 된다. 이 때 현물 환율보다 낮은 환율로 달러를 받아서 그동안의 이자 손해를 보상받는 것이다.
모든 시장이 그렇듯이 스왑포인트도 양국의 이자율 차이를 정확히 이론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스왑포인트를 거래하는 통화스왑시장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가격은 스왑중개회사의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외환 트레이더들이 기업 등 고객의 현재 요청 뿐 아니라, 미래의 수요를 생각해 독자적으로 외환 거래를 한다는 사실, 외환 트레이더들의 생각(view)과 행동(trading)이 환율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대략 파악했다. 외환 시장 전문가들은 외환 트레이더들이 향후 미래의 환율 흐름을 예측해 벌이는 투기적 거래가 전세계 외환 거래의 70% 정도라고 추정한다. 하지만 임 대표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트레이더의 일에 관해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자세한 사항은 나중에 다시 물어보기로 하고, 인터뷰의 주제인 원·달러 환율 동향에 대해 질문을 시작했다.
환율 급등의 3가지 이유
—최근에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다. 이유는?
“첫째,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이다.
둘째, 에너지 위기로 인해 나타난 무역수지 적자 확대이다.
셋째, 국내 기관투자자의 해외투자 등 국내 외환시장 수급의 펀더멘털(기본구조)이 바뀌어왔다.”
하나씩 물어보기로 했다.
—미국 금리 인상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나?
“지금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변동성은 미국이 금리를 급격하게 올리면서 시작됐다. 미국 금리가 올라간다는 것은 미국 달러화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 다시 말해 미국 달러가 강세라는 의미이다. 올 연초만 해도 미국이 3월, 6월, 9월, 12월 등 모두 4번에 걸쳐 1%포인트만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벌써 0.25%에서 3.25%로 3%포인트나 올랐다. 앞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11월에 0.75%포인트, 12월에 0.50%포인트를 추가로 올릴 것으로 시장은 예상하고 있다. 올해에만 기준금리가 무려 4.25%포인트나 올라간다. 이것이 시장 변동성의 가장 큰 원인이다.”
달라진 무역 수지와 외환 시장
—무역수지 적자의 영향은?
“작년에 무역수지가 300억달러 흑자였다. 그런데 올해는 400억달러 적자가 예상된다. 경상수지의 경우 작년에 800억달러 흑자였는데, 무역흑자가 1년만에 작년의 경상수지 흑자분만큼 줄어든 셈이다.
우리나라는 예전에 경상수지 흑자가 날 때 항상 원·달러 환율이 내려갔다. 매년 700억~800억달러씩 외환시장에 쏟아져 들어오니 이 달러를 팔기 위해 외환 트레이더들이 안간힘을 썼다. 오래 갖고 있으면 있을수록 환율이 내려가 더 싼값에 팔아야 하므로 빨리 처분해야 했다. 그래서 한국은행이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해 달러를 흡수해 주곤했다. 지금은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무역수지 적자에 따라 경상수지 흑자폭도 크게 감소할 전망이다.”
—외환시장의 펀더멘털이 바뀌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외환을 대규모로 사려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그동안 많이 늘어났다. 이런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국내외 투자자산의 비중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매년 일정액을 외국에 투자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경우 꾸준히 환위험 헤지(회피) 비율을 축소해 오다가 해외주식의 경우 2014년부터, 해외 채권의 경우 2018년부터 환 헤지를 하지 않고 환 헤지 비율을 0%로 유지중이다.
또 올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을 팔고 해외로 빠져 나가면서 외화를 150억 달러 정도 사서 나갔다.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환시장에서 달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달러가 남는 시장이 아니라 늘 달러가 부족한 시장이 됐다는 뜻이다.”
환율 급등은 외환위기 전조?
—그러한 요인을 고려할 때 1달러 당 1450원대까지 오른 원·달러 환율은 적정한 수준인가? 아니면 지나치게 오른 셈인가?
“현재의 경제적 펀더멘털(기초체력)을 반영한 환율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환율은 미국의 금리 인상, 에너지 대란에 따른 무역수지 적자, 외환시장의 수급상황 변화를 반영한 적절할 수준이라고 본다. 과거에 경상수지가 지속적으로 흑자가 나던 시절에 1달러 당 1100원이 적정 환율이었다면, 지금은 미국 금리가 올라가고 우리 무역수지가 적자이므로 1400원대 환율이 결코 높지 않다는 뜻이다.”
—급등한 환율이 외환위기의 전조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4300억 달러나 된다. 게다가 국민연금과 보험사 등이 해외에 투자한 자산이 3000억 달러 정도이다. 또 국내 거주자들의 외화예금이 900억달러 정도 된다. 모두 합하면 8000억 달러가 넘는다. 이렇게 많은 달러를 가진 상황에서 한국에 외환위기가 올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한다. 달러 가격이 급변동해서 그렇지, 달러 자체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은 아니다.”
정부 개입은 미세 조정에 그쳐야
—그렇다면 정부가 환율을 낮추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동원해 시장 개입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뜻인가?
“원·달러 환율을 1달러당 얼마로 유지하는 것과 같은 환율의 절대적인 수준 관리 보다는, 급격한 환율 변동성 관리에 중점을 둔 스무딩 오퍼레이션(smoothing operation, 미세한 시장 개입)이 맞지 않나 싶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얼마 전에 현재는 금융위기가 아니고 한국경제의 내실이 튼튼하므로 충분히 경제위기에 맞서 방어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다고 본다. 현재 거래되는 가격은 비정상이 아니다.”
임 대표가 이 대목에서 그래프를 하나 보여주며 말을 이어갔다.
“아시아 통화 중에서 일본 엔화가 올들어 20% 평가절하(엔·달러 환율은 상승) 되면서 절하폭이 1위를 기록했다. 한국이 17%로 2위이다. 중국 위안화는 12% 빠졌다.
전세계적으로 보면 영국, 스웨덴, 일본 순이며, 한국은 6위 정도이다. 올해 우리나라 환율이 많이 올랐지만, 다른 나라와 특별히 다른 것은 없다는 뜻이다. 다른 나라와 대동소이하게 올랐기 때문에 특별히 한국 원화가 투기꾼의 투기 대상이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외환 시장의 쏠림 현상
—정부는 외환수급에 큰 문제가 없지만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 개입해 미세조정을 할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쏠림이라는 것이 어떤 뜻인가?
“쏠림은 밴드왜건(band-wagon) 효과이다. 밴드가 북 치고 장구 치며 지나가면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하듯이, 실수요가 없는데 투기 심리가 불면서 달러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사려는 사람은 더 사려하고, 팔려는 사람은 더 안팔려고 하면서 시장 균형이 깨어진 상황이다.”
—그렇다면 그건 투기꾼이 붙었다는 뜻 아닌가? 지금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달러를 사려는 경향은 글로벌 트렌드이다. 만약 투기 거래였다면 하루에 50원, 100원씩 올라가거나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 올라가는 속도와 폭은 매우 안정적이다. 최근에 급등했을 때 하루 20원이 오르는데 그쳤다. 이것은 경제 펀더멘털을 반영해 환율 수준의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외국인이 보는 환율과 금리
—외국 고객들과 많이 접할텐테, 어떤 사람들인가?
“주로 헤지펀드나 리얼머니(자산운용사), 모델 펀드들이다. 모델 펀드는 일종의 수학적 알고리즘 모델을 만들어 트레이딩 신호가 나올 때마다 거래를 하는 펀드이다. 펀드매니저의 주관적 판단을 배제한다.”
—해외 고객들은 환율 급등 이후 한국의 외환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나?
“기본적으로 한국의 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은 없다. 한국에 외환 유동성(자금흐름) 위기가 올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무역수지 등에 위험이 있다고 보고, 앞으로 환율의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국내 금리도 미국 금리의 변동에 따라 연결되어 움직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한국 환율이 얼마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보나?
“연초만해도 원·달러 환율의 상한선을 1350원으로 봤다. 지금은 상황에 따라 1450원 이상 올라갈 수도 있다고 본다.”
—금리는?
“한국이 미국에 앞서 작년 8월부터 금리를 인상했는데, 미국이 워낙 빠른 속도로 달리니 한국이 따라가는 형국이다. 미국이 금리를 한번에 0.75%포인트씩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3차례 한데다 다음에 또 할 예정이어서, 한국도 따라갈 수 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올해 초에는 금리가 2.5%까지 오를 것으로 봤다. 하지만 지금은 3.5~3.75%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예상한다.
다만 고객들은 미국과 한국의 금리 차이가 1%포인트 이상 벌어지면 자본 유출이 일어나니 그 이상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미국 금리가 4.5%가 되면 한국은 3.5%까지 기준금리가 올라갈 것이라는 이야기다.”
겨울 에너지 위기 올까 걱정
—해외고객들은 한국의 경제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에너지 위기가 실제로 닥친다면 여름의 냉방 문제보다는 겨울의 난방 문제가 훨씬 심각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난방 문제가 한번 부각되면 에너지 위기가 닥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에너지 수입의 상당 부분은 장기계약이 되어 있다고 하지만, 현물로 수입해야 하는 부분이 심각해질 것이다.
이 때문에 무역수지가 한달에 200억달러 적자가 날 수도 있다. 9월이라 아직 따뜻하지만, 11월과 12월에 난방 위기를 어떻게 견딜지, 이 부분에 대한 걱정은 있다.”
—한국이 에너지 부족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뜻인가?
“그 정도는 아니다. 우리나라 천연가스 도입 상황을 보면 제 1의 수입국은 카타르이다. 그리고 호주, 미국 순이다. 이 나라들이 우리에게 천연가스를 팔지 않을 나라는 아니지 않나? 그러니 가격이 문제이지 조달에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러시아가 유럽에 공급을 안하면 가격은 올라갈 것이다. 천연가스이든 달러이든 현재 가격의 문제이지 공급 중단 상황은 아니다.”
임현욱 뱅크 오브 아메리카 서울지점 공동대표와의 대화는 환율 급등에 대한 분석과 외국 투기자본의 움직임에 이어,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그의 경험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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