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②/③ 편에서 계속
외환 트레이더인 임현욱 ‘뱅크 오브 아메리카' 서울지점 공동대표와의 대화는 한국의 외환 상황에 대한 분석을 넘어, 외환 트레이더의 생활과 업무에 대한 주제로 이어졌다.
—외환 트레이더의 하루 일과를 간단히 설명하면?
“체계적인 편이다. 업무 중에 크게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일과 전에 미리 준비를 마친다. 오전 6시쯤에 일어나면 회사 스마트폰을 들고 뉴욕 본사에서 보낸 시황 정리, 원·달러 환율, 고객들의 요구 상황을 체크한다. 그리고 블룸버그 통신과 연합인포맥스에 접속해 미리 정해놓은 화면을 보면서 모든 자산종류별 가격을 점검한다. 관련된 국내외 언론 기사도 검색한다.”
—출근한 뒤에는?
“오전 8시 30분 정도에 팀원들과 회의를 하면서 각자의 의견을 교환한 뒤에 그날의 전략을 수립한다. 오전 9시에 외환시장이 열리면 고객이 요청한 거래 주문을 처리하고, 향후 고객의 장기 수요를 예측해 포지션 거래(장기 매수 혹은 매도)를 한다. 그리고 블룸버그 통신의 속보를 보면서 거래 포지션을 조정한다.”
하루 종일 환율 모니터링
—오전 9시에 시장이 열리면 트레이더들은 하루 종일 모니터를 보면서 환율 변화를 실시간으로 추적해야 하나?
“가격이 초단위로 변하기 때문에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 없다. 한국 시장은 점심에 휴장 시간이 없어서 점심도 주로 시켜서 먹는다. 또 국제거래시스템은 24시간 돌아간다. 해외에서 중요한 데이터가 발표 되거나 시장의 변동성이 심한 경우 퇴근 시간 후에 남아서 거래를 하는 경우도 있다.”
—오래 일하면 대체로 실적이 좋은가?
“트레이더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래 일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효율적으로 트레이딩을 하느냐이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서는 잡음 대 신호 비중(Signal to the Noise)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직원들에게 실제로 중요한 일에 집중할 것을 늘 당부한다.”
8개 화면 동시에 체크
—전세계 외환시장을 모니터링 해야 할텐데, 책상에 모니터는 몇 대나 놓나?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경우 대형 모니터 1개와 옆에 작은 모니터를 2개 둔다. 대형 모니터는 일반 컴퓨터 모니터의 4개 정도 역할을 한다. 그 화면에 4가지 작은 화면을 띄워놓고 본다. 6개의 모니터 외에 한국자금중개와 서울외국환중개의 거래단말기까지 놓고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8개의 화면을 보면서 거래하는 셈이다.”
—6개 화면에는 주로 어떤 내용을 띄워 놓나?
“연합인포맥스에서 보내주는 실시간 외환시장 뉴스, 로이터와 블룸버그 통신을 본다. 또 국제 외환거래시스템도 띄우고, 거래 가격의 한 요소인 스왑포인트를 계산할 수 있는 엑셀 화면도 봐야 한다. 블룸버그와 로이터 통신의 내용을 엑셀 화면과 연결해 트레이더 본인이 필요한 정보를 만들어 낸다.
또 이메일 창을 항상 열어 두고, 전세계 뱅크 오브 아메리카 트레이더들이 쓰고 고객들도 참여하는 플랫폼 ‘INSTINCT FX’도 항상 켜놓는다. 이 플랫폼을 통해 고객들이 체결 가격을 보고 주문을 낼 수 있다.”
환율·유가·금리·천연가스
—온갖 시장 지표와 정보들이 쏟아질텐데 그 중에서 중요하게 보는 사항이 있다면?
“패션처럼 매번 바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까지는 국가 부도 위험을 알려주는 지표인 CDS(크레디트 디폴트 스왑) 프리미엄의 움직임을 세밀히 관찰했다. 그 변화에 따라 환율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CDS 프리미엄이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잘 안본다.
원유 가격이 매일 뛸 때에는 브렌트유 가격 변화를 봤다. 하지만 지금은 유가가 하락 추세여서 잘 안본다. 지금은 중국 위안화와 영국 파운드화가 약세이니 이 둘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핀다. 일본 엔화의 움직임도 주요 관심 대상이다. 간밤에 뉴욕 시장에서의 미국 금리 움직임, 낮에 아시아 시장에서 벌어지는 미국 금리 선물 움직임도 따라가고 있다. 환율은 기본이고, 상황에 따라 금리, 유가, 천연가스 가격 등을 수시로 본다.”
—뉴스는 무엇을 통해 보나?
“주로 블룸버그와 로이터, 연합인포맥스 터미널의 속보를 본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경제 속보는 TV에서 잘 안나온다. 그래서 주로 경제단말기에 의존한다.”
북한 뉴스와 정치 뉴스
—북한 뉴스는?
“예전에 북핵 사태 때에는 북한 뉴스가 시장을 움직였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이 군사 훈련을 하는 뉴스가 나와도 시장은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정치 뉴스는?
“미국 대선은 환율 변화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예전에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로 나섰을 때에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올 때마다 외환시장이 움직였다. 그래서 정치 뉴스를 자주 봤다. 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때에는 영국이 브렉시트를 하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그 뉴스를 자주 봤다.”
—수많은 뉴스를 모두 모니터링 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뉴스의 헤드라인 중에서 자기가 보고 싶은 단어를 검색어로 입력해 뉴스를 골라 본다. 또 가장 많이 보는 뉴스를 통신사가 표시해 알려주기도 하는데 그런 뉴스도 본다. 트레이딩을 오래 하다 보면 트레이더들이 보는 뉴스가 대체로 비슷하다.”
최근 외환시장 3대 뉴스
—최근 외환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 뉴스나 데이터를 3가지 든다면?
“첫째, 지난 9월 13일에 나온 미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이다. 대부분 8% 아래로 나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8.3%가 나오면서 물가가 잡히지 않는다고 생각해 시장이 크게 요동쳤다. 전날 1달러당 1372원이던 환율이 다음날 1395원으로 급등했다. 가장 기억이 나는 데이터이다.
둘째,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 뉴스이다. 에너지 위기의 시작이었다.
셋째,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미국 금리를 당초에는 올해 연간 1%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벌써 3%포인트 인상했다. 앞으로도 1.25%포인트 더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니 올해만 4.25% 오를 예정이다. 이 뉴스가 모든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거래를 할 때 뉴욕 본부나 홍콩의 아시아 지역본부와 수시로 접촉해 가이드라인을 받나? 아니면 서울지점이 상당한 독립성을 갖고 있나?
“서울지점이 독립성을 갖고 100% 우리 판단하에 주어진 위험 한도와 손실 한도 내에서 거래한다. 뉴욕에는 글로벌 보스가, 홍콩에는 지역 보스가 있는데, 이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끊임없이 정보를 주고 받는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을 때 조언을 구한다. 다른 관점에서의 조언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경험이 많은 멘토나 나보다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과의 대화가 도움이 된다.”
—다른 외환 트레이더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중요한 경우에는 뉴욕이나 홍콩에서 특별히 주의하라는 지시가 내려온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 그런 지시를 받나?
“….”
외국계 은행 간부들이 그렇듯이 임 대표도 은행 내부의 구체적인 업무 내용에 대해 물으면 간혹 입을 닫는 경우가 있었다. 발언이 의도치 않게 고객들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조심하는 듯 했다.
한 밤중에도 일하다
—외환 시장은 몇시에 끝나나?
“오후 3시 30분이다. 장이 끝나면 런던, 홍콩, 싱가포르에 있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 트레이더들이 블룸버그 채팅창으로 들어온다. 그러면 20~30분간 영어로 시장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은 뒤 요청 사항을 남긴다.”
—퇴근 이후에는?
“보통 오후 6~8시에 퇴근을 하는데, 더 남아서 거래를 할 수도 있다. 보통 한국 시간으로 오후 9시 30분, 미국 시간으로 오전 8시 30분에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등 중요한 지표가 많이 나온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리 결정 발표는 현지시간으로 새벽 2시, 한국시간으로 새벽 3시에 나온다. 그럴 경우 잠시 자다가 그 시간에 일어나서 뉴스를 모니터한다.”
—만약 중요한 뉴스가 나오면 한밤중에 거래할 수도 있나?
“급하면 뉴욕 지점에 블룸버그 메신저로 거래를 요청할 수 있다. 내가 가진 달러를 팔아달라고 할 수도 있고, 미국 국채 선물을 팔아달라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난다.”
인상에 남는 기억
—외환 시장에서 하루에 거래되는 외환거래 규모는?
“한국 원·달러 현물시장의 경우 하루에 100억 달러 정도 된다. 그러나 다른 통화와 역외 선물환차액 거래까지 포함할 경우 하루에 610억 달러 정도 된다고 한국은행이 추정하고 있다. 전세계 거래량은 하루 6조6000억 달러이다. 한국은 0.7% 정도 밖에 안된다.”
—25년이 넘는 외환 트레이더 경험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기억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3월 코로나 위기의 정점을 모두 경험했다는 점이다. 1997년말에 원·달러 환율이 1달러 당 2000원 찍는 것을 봤고, 2008년에는 환율이 1600원까지 오르는 것을 싱가포르에서 지켜봤다. 2020년 코로나 사태의 후유증으로 지금 환율이 급등하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현장을 모두 지켜 본 것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소중한 기억이다. 트레이더로서 이런 큰 변동성을 경험하는 것은 나중에 큰 경력 자산이 된다고 믿는다.”
보람
—외환 트레이더로서 매일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낼텐데, 보람 있는 점이 있다면?
“시장에 집착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늘 오전 6시면 모든 자산종류의 가격을 다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하는데, 삶의 원동력과도 같다. 외환 트레이더를 하려면 이러한 일을 좋아해야 한다.
또 외환시장은 전세계 금융시장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주식시장보다 15배나 거래 규모가 크다. 거기서 중심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보람이 있다. 시장이 과열됐을 때 외환 트레이더가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시장이 돌아가게 하는 측면도 있다. 그 때 나의 실적이 좋아지고 시장도 안정되면 매우 보람을 느낀다.”
임 대표가 말을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팀 내 소통을 통해 필요한 상황에서 지원을 할 때도 보람을 느낀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직원들이 가족이나 자녀 문제로 1시간 늦게 출근해야 할 상황들이 있었는데, 동료들이 유연한 근무를 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등 직원들 간 정이 깊다.”
—팀원 중에서 실적 1등이 있으면 꼴찌도 있게 마련이다. 실적이 나쁜 사람은 어떻게 관리하나?
“나는 팀원인 트레이더가 팀장과 편안하게 자신의 경력과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팀의 트레이더들과 정기적으로 정식 연말평가 절차를 진행하는 것 외에도, 비정기적으로도 자주 시간을 가진다.
만약 업무적으로 필요하거나 누군가 요청하면 하루 종일이라도 대화가 오고간다. 보다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주기 위해서인데,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 저것 같이 얘기하다 보면 뜻밖의 곳에서 해결점을 찾기도 하고, 혼자만의 실적이 아닌 팀의 실적을 위해 노력하는 방향이 공감되기도 한다.”
힘든 점
—힘든 점은?
“취미 생활과 밀린 공부를 위한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한다. 나는 메이저리그 야구 시청을 좋아하고 실제로 사회인 야구팀도 하나 만들어서 정기적으로 야구 게임도 하고 있다. 그리고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지원을 받아 지난 4년 동안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을 투자해 올해 2월에 연세대학교 공과대학에서 투자정보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개인적인 취미 생활을 충분히 즐기기엔 시간이 충분치 않다.”
—휴가는?
“모든 트레이더는 연 2주간 의무 휴가를 써야 한다. 12월에는 여러 휴일들이 있기 때문에 그 휴가를 12월에 많이 쓴다. 그래서 12월에 새로운 곳을 여행하기도 하고 새로운 취미를 시도하기도 한다. 12월에 2주 넘는 휴가를 쓰는 것은 오랫동안 해오던 라이프 스타일이라 많이 적응도 됐고, 그렇게 하는 것이 이제 편하다.”
—의무 휴가를 왜 보내나?
“리스크 관리를 위해서다. 적절한 리스크 관리란 리스크를 올바른 절차와 통제를 통해 운용하면서 우리의 비즈니스를 성장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런 목적으로, 사고발생 우려가 있는 현금시재(보유현금)와 중요증서 취급 부서, 운용업무와 지급업무 등을 담당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내부통제를 위한 목적으로 실시한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 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적으로 실시하는 제도이다.”
런던 시장이 한국의 모델
시계를 보니 벌써 8시 10분을 넘어간다. 창 밖은 벌써 컴컴해진지 오래이다. 임 대표는 5시간 가까운 인터뷰 동안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았고 몸에는 에너지가 넘쳤다. 많은 표와 그래픽을 보여주며 외환 트레이더가 어떻게 환율 동향을 예측하고 시장 상황을 판단하며 결단을 내리는지 알려줬다. 컴퓨터 화면에 떠 있는 블룸버그 통신을 보면서 자신의 키워드 검색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고, 대학교 교과서에서나 봤던 단어들도 아주 쉬운 용어로 설명해줬다. 오랜 현장 경험을 가진 베테랑들은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매우 쉽고 간단하게 하는데, 그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제 인터뷰를 끝낼 시간이다. 마지막 질문은 한국이 경제 규모에 맞는 외환거래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를 골랐다.
—외환 전문가로서 세계적으로 가장 외환 거래가 발달되어 한국이 모범으로 삼을 나라를 꼽는다면?
“런던 외환 시장이다. 전세계 외환 거래의 43%가 런던에서 이뤄진다. 세계에서 외환거래량이 가장 많은 시장이다.”
—한국은 이러한 선진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외환당국이 오후 3시 30분에 끝나는 외환시장 운영 시간을 새벽 2~3시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면 마감 시간이 런던 시장의 폐장 시간과 같아진다. 예를 들어 뱅크 오브 아메리카 런던 지점이 한국의 외환거래 시스템에 들어와서 외환거래를 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결제는 한국 내에서만 이뤄진다.”
—결제가 한국에서 이뤄진다면 글로벌 시스템으로서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현재 구상은 서울에서 쓰고 있는 플랫폼에 전세계 참가자들을 모으겠다는 뜻이다. 완벽한 글로벌 플랫폼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선진적인 형태로 가고 있다.”
원화 국제화가 최종 목표
—다음 단계는?
“지난 10~15년 동안 우리나라의 해외 무역과 주요국과의 자본거래는 눈에 띄게 증가해 왔다. 그에 따라 원화의 수요도 지속적으로 늘었다. 이런 원화 수요에 대한 증가는 결국 원화의 국제화를 가속시킬 것이다. 언젠가는 원화도 국제화 계획에 따라 해외에서도 결제되는 통화가 되지 않겠나? 그렇게 되면 국내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원·달러 거래도 해외에서 해외기관끼리 현물환 거래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되돌아가기’ 아이콘이 작동하지 않으면 검색창에 ‘임현욱 외환’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