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③ 편에서 계속
임현욱 ‘뱅크 오브 아메리카' 서울지점 공동대표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부터 외환 트레이더 생활을 죽 해온 베테랑이다. 그래서 외환위기 및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지금 상황을 비교해 보기로 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 어디서 일하고 있었나?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는 코오롱에서 근무하면서 회사의 외환 리스크(위험)를 헤지(위험 회피)하기 위한 외환거래를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유럽계 은행의 싱가포르 아시아태평양 본부에서 글로벌 시장 트렌드를 확실히 체험했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한국의 지금 외환 상황을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비교해 보면 더 나은가, 더 나쁜가?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교해 보면 외환보유액이 감소하고 있는 것은 공통점이다. 하지만 위기의 성격이 좀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1997년은 우리나라가 당시 200억 달러 정도의 적은 외환보유액을 보유했음에도 종금사들이 과도한 단기외채를 차입해 투자를 하다가 외국 투자자본들이 일시에 빠져 나가면서 위기가 발생했다. 외환보유액이 40억 달러까지 바닥이 났고, 결국 IMF(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받게 됐다. 수습에 2년 정도 걸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상황은?
“2008년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달러 부족 현상이 급격히 진행됐다. 그 여파로 국내 금융기관의 달러 조달에 문제가 생기며 금융위기로 번졌다. 하지만 그때 우리나라는 2500억 달러 이상의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었기에 조기에 진화할 수 있었다. 환율이 1달러 당 1600원까지 갔으나 6개월 정도 만에 수습이 됐다.”
현재 상황은
—현재는?
“앞서 이야기했지만 43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과 국내 투자자의 해외 투자분 3000억 달러, 그리고 국내 거주자 외화예금 900억 달러 등 총가용 외환보유액으로 간주할 수 있는 금액이 8000억 달러 정도가 되는 만큼 이론적으로는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본다.”
—외환 유동성 부족에 빠질 가능성이 적다는 뜻인가?
“외환 딜러의 입장에서는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구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1997년에는 달러 조달에 큰 문제가 있었다. 2008년에도 국내에 있던 미국 달러들이 미국으로 되돌아가면서 달러 조달에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한·미 통화스왑(통화교환) 협정을 체결하면서 해결했다.
현재 외환시장에서는 환율이 높아지긴 했지만 아직 달러 조달의 문제가 보이지는 않는다. 1997년과 2008년 초반에는 가격을 아무리 높게 줘도 달러를 구할 수 없었다. 외환 거래 파트너가 거래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반면 지금은 가격만 높여 주면 얼마든지 달러를 살 수 있다. 유동성 경색 현상은 아직 없다.”
—안심해도 된다는 뜻인가?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국제금융시장의 상황이 워낙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핫머니’, 한국 공격할까?
이 대목에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동아시아를 공격했던 국제금융시장의 환투기 세력, 일명 ‘핫머니(hot money)’가 최근에도 움직이고 있는지 동향이 궁금해졌다. 핫머니는 환율이 급변동할 때 빠르게 움직인다.
—요즘 핫머니가 국제금융시장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나?
“핫머니는 가치가 과대 평가된 통화나 과소 평가된 통화를 팔거나 사면서 국가간 통화 가치를 조정하는 기능을 한다. 굉장히 단기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들은 핫머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1992년 헤지펀드를 운영하던 조지 소로스가 영국의 파운드화를 공격해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을 굴복시킨 상황은 아니다. 미국의 달러 외에 다른 나라들의 통화는 모두 약세이기 때문이다.”
—요즘 활약하는 핫머니의 예를 들면?
“여러 나라의 거시경제 상황을 보면서 매우 단기적인 기간 동안 투자하는 몇몇 매크로 펀드를 들 수 있다. 이 펀드들은 펀드매니저의 개인적 판단에 근거해 투자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달러가 강해질 것 같다고 생각하면 달러를 많이 사고, 약해질 것 같다고 보면 파는 형태이다. 그런데 최근의 글로벌 펀드들은 매크로 펀드보다는 채권 등 실물자산운용에 중점을 둔 펀드와 인간의 판단이 개입되지 않는 모델 펀드들이 많다.”
—한국이 핫머니의 공격 대상이 될까?
“한국의 원화도 다른 통화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특별히 핫머니의 타겟이 될 만한 이유는 없다고 본다. 또 한국은 해외 부채보다는 채권이 더 많은 순채권국이다. 게다가 외환방어에 보유액의 5% 정도 밖에 안썼기 때문에 외환보유액의 여유도 있는 편이다.”
-만약 글로벌 펀드들이 환차익을 노리기 위해 투기를 시작하면 어떤 나라들을 주목할까?
“….”
향후 환율 전망
원·달러 급등 상황에 대한 분석과 핫머니 동향에 대해서는 충분히 들었다. 향후 환율 전망에 대한 임 대표의 견해를 물어보기로 했다.
—향후 외환시장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연착륙 시나리오와 경착륙 시나리오가 있다고 본다. 연착륙 시나리오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 연말에 4.5%, 그리고 내년 2월에 4.75%에서 정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물가가 잡히면서 이렇게만 끝나면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2024년부터 금리를 서서히 인하할 가능성이 있다. 이 정도 시나리오는 시장이 이미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정도만 되어도 시장이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환율은 어떻게 될까?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환율은 연말에 1달러당 1450~1470원 정도에서 안착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의 모든 변수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년에는 우리나라의 외환수급 상황이 갑자기 바뀌지 않으면 3월 1450원, 6월 1420원, 9월 1390원, 12월 1350원 정도로 서서히 빠질 것으로 본다.”
내년 환율, 1300원대 예상
—내년에도 환율이 1300원대를 유지한다는 말인가?
“당분간 미국이 금리 인상을 지속하고,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는 한 예전같지 않은 고환율이 유지될 가능성이 많다. 다만 정부도 외환시장 수급을 개선하기 위해 국민연금과 통화스왑을 체결해 달러 수요를 줄이고, 중공업 업체들의 신용공여 한도도 확대해 시장에 달러 공급을 늘리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내년 중반 이후 미국이 금리인상을 멈추고 에너지 가격도 겨울을 지나 안정이 된다면 원·달러 환율이 좀 더 안정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임 대표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중단하는 경우와 관련해서는 두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낙관적 시나리오이다. 미국이 내년 2월까지 금리인상을 한 뒤에 인플레이션이 잡히면 더 이상 금리를 안올릴 것이다. 그러면 한국에 외국인 투자자금이 돌아오기 시작할 수 있다.
둘째, 비관적 시나리오이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중단하는 이유가 인플레이션이 잡혀서가 아니라 글로벌 금융시장이 흔들리기 때문이라면 미국도 주식시장이 폭락할 것이다. 이 경우에는 금리 인상 중단이 더 큰 위기를 의미하므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생길 수 있다. 이른 시간에 한국에 돈이 재유입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금리를 5%대로 올리면
—경착륙 시나리오는?
“미국이 예상보다 금리를 더 큰 폭으로 올리는 시나리오이다. 지난 8월 미국 소비자물가상승률은 8.3%를 기록했는데 매우 충격적이었다. 연준이 금리를 더 올릴 것이라는 공포감을 시장에 줬다.
0.75%포인트씩 금리를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두차례나 했는데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8%를 넘지 않았나? 그래서 미국이 또다시 0.75%포인트를 올려야 했다. 벌써 올들어 세차례에 걸쳐 0.75%포인트씩 금리를 올렸다.”
—미국이 예상보다 금리를 더 올리면 전세계 국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경착륙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면 우리나라 환율은 1달러당 1500원, 1600원으로 갈 수 있다. 그마나 한국, 중국, 인도처럼 외환보유액이 많은 나라들은 충분히 버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신흥국가들은 연쇄적으로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 그러면 전세계 금융시장은 전염효과 때문에 더 큰 변동성에 직면할 것이다.”
신흥국 연쇄 위기 가능성
—신흥국가들의 상황이 그렇게 심각한가?
“IMF(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신흥국의 외환보유액이 이미 3790억달러 감소했다. 파키스탄은 올해 6월까지 33%, 이집트는 26%, 가나는 29%, 헝가리는 19%, 체코는 15% 각각 줄었다. 이미 스리랑카는 지난 5월에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에 빠졌다. 파키스탄, 이집트, 가나는 IMF와 구제금융을 논의 중이다.”
—연착륙과 경착륙 중 어느 시나리오가 더 실현 가능성이 있나?
“국내외 이슈들에 아직 불확실성이 많아서 장담할 수 없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의 움직임도 예측하기 어렵다. 지금 고민이 없는 중앙은행은 없다. 미국도 좋아서 금리를 올리는 것이 아니다. 높은 인플레이션(물가상승) 때문에 할 수 없이 올리는 것이다.”
엔화 환율이 급등하는 이유
-엔화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 일본의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일본은 일본대로 고민이다. 일본은 아직 마이너스 금리인데, 고령화 사회라서 인플레이션이 없으니 경기 활황을 위해서라도 금리를 올릴 수 없다. 미국은 금리가 계속 올라가고 일본은 마이너스 0.25%에서 금리가 고정되어 있다 보니 미국과 금리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엔·달러 환율이 1달러당 145엔으로 수직상승했다. 우리나라보다 통화 가치가 훨씬 절하된 상황이다.”
—엔화는 글로벌 기축통화 중 하나인데, 환율이 왜 그렇게 급격하게 오르나?
“엔 캐리(carry)가 일어나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일본에서 마이너스 0.25%금리로 엔화를 대출 받은 뒤에 달러로 환전해 미국 국채를 사면 연간 4.5%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 일본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려는 세력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엔·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
예전에는 엔화가 안전자산이었다. 그래서 금융시장에 큰 위기가 오면 엔화 선호 현상이 나타나면서 엔·달러 환율이 항상 낮아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다. 금융위기라고 생각될만큼 자산시장이 무너지고 있다.”
—일본은행이 시장에 개입하지 않나?
“환율이 너무 올라가니까 얼마전에 개입을 해서 145엔에서 140엔까지 내렸다. 과도한 엔 캐리는 경제에 좋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향후 환율 방향에 대한 질문이 끝났다. 한국의 대응 방향으로 화제를 바꾸었다.
한국의 대응책은?
—한국 국민들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지금은 확장보다는 관리, 공격보다는 방어를 해야 하는 시기이다. 위기관리를 잘해야 한다. 무역수지 적자가 고착될 가능성이 있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추위가 지나갈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
—외환 시장 안정은 정부의 책임이다.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나?
“3가지이다. 첫째, 현재는 환율의 단기간 쏠림 현상 같은 변동성 관리에 중점을 둔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이 맞다고 본다. 혹시 있을 수 있는 경착륙 시나리오에 대비한 외환보유액 관리도 중요한 부분이다.
둘째, 시장에서는 한·미 통화스왑과 같은 안정책이 현재 이론적으로는 필요 없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통화스왑을 체결해도 실제로 쓸 일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시장심리를 안정시켜서 급격한 환율 변동을 막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셋째, 무역수지 악화를 막을 수 없다면 무역외 수지를 관리해 달러 수입을 늘려야 한다. 달러를 갖고 들어올 외국인들이 한국에 많이 들어올 수 있도록 코로나 관련 규제도 최대한 풀어줘야 한다.”
국민연금, 유사시에 도움될 듯
—한국의 가용외환 자산이 충분하다고 앞에서 이야기했다. 그러나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그 자산들을 달러로 즉각 바꿀 수 없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외자산의 유동화(현금화)는 쉬운 상황인가?
“예를 들어 국민연금이 가장 많이 투자한 해외 주식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이다. 해외 채권은 미국 국채, 일본 국채, 프랑스 국채, 싱가포르 국채 등이다. 따라서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도 있다고 본다. 또 국민연금이 가진 해외 주식과 채권이 2022년 6월말 현재 2300억달러 정도에 달해 외환보유액의 절반이나 되니 외환위기가 오게 되면 완충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의 외환 상황에 대한 긴 대화가 끝났다. 그러나 독자들 가운데 외환 트레이더를 직접 만나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관심 있는 독자를 위해 외환 트레이더의 생활과 업무에 대해 추가로 물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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