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지난 2018년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 9월에 예상보다 높은 8.2%로 나타나면서 미국 금리를 결정하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의 향후 행보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초점은 인플레이션(물가상승)에 맞선 그의 초고속 금리 인상 행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그리고 고금리가 언제까지 유지될지다. 그의 행보에 따라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의 환율, 주식, 채권, 부동산 시장이 요동치기 때문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파월 의장의 인플레이션 대응책이 1980년대 폴 볼커(1927~2019) 연준 의장의 행보를 따라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파월은 볼커의 초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기 때문에 고금리를 2년 이상 끌고 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볼커의 실수

볼커는 1979부터 8월부터 1987년 8월까지 8년간 연준 의장으로 재임하면서 두 차례 오일쇼크 등에 따른 만성 인플레이션을 잡았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볼커가 취임한 1979년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11.8%였다. 이 수치는 1980년 4월까지 8개월 동안 14.5%로 2.7%포인트 상승했다. 볼커는 취임하자마자 인플레이션 전쟁을 시작, 같은 기간 동안 실효기준금리를 8.0%에서 17.6%로 9.6%포인트나 확 올렸다. 기준금리가 물가상승률보다 높아지면서 1980년 여름에 인플레이션 압력이 약해졌다. 그러자 볼커는 그해 7월에 실효기준금리를 9%대로 대폭 낮췄다. 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인플레이션은 약간 완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12%를 웃돌았다. 볼커는 자신의 자만을 깨닫고 다시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폴 볼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미국 연준

볼커의 뚝심

볼커는 1980년 7월 9.03%이던 금리를 1981년 6월 19.10%까지 급격히 끌어 올렸다. 은행들이 소비자들에게 대출해주는 우대금리는 연 21.5%로 치솟았다. 고금리 긴축정책의 효과 덕택에 그해 겨울에 소비자물가는 3년 만에 처음으로 10%대 이하로 떨어졌다. 볼커는 물가가 잡혀가고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쉽게 금리를 내리지 않았다.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심리를 꺾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82년 4월까지 금리를 12~14%로 유지했다.

인플레이션과의 전쟁 4~5년째인 1983년과 1984년에는 물가상승률이 각각 3.2%와 4.3%로 크게 떨어졌다. 그래도 볼커는 기준금리를 8~11% 수준으로 유지했다. 그가 금리를 8% 아래로 낮추며 본격적인 인하 작업에 들어간 것은 물가가 3%대에 안정된 1985년 5월이다. 취임 후 5년 9개월 뒤였다. 볼커는 경기 상황을 봐가며 금리를 내리다가도 물가상승 조짐이 보이면 다시 급격히 인상, 기준금리를 물가상승률보다 훨씬 높게 유지하는 방식으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의 목을 졸랐다. 기준금리(3.25%)가 물가상승률(8.2%)의 절반도 안 되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볼커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고금리 여파로 두 차례 불황이 찾아왔고, 실업률이 급등해 그를 괴롭혔다. 은행 빚이 많은 농부들은 트랙터로 연준 본부 출입구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볼커는 뚝심으로 맞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인플레이션은 잔인한, 어쩌면 가장 잔인한 세금이다. 다양하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나타나 고정 수입에 의존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신념을 표현했다.

파월의 결의

파월은 작년만 해도 인플레이션이 일시적 현상일 것이라고 오판했다. 그러다 방침을 바꿔 7개월 전인 3월부터 금리를 올리며 전쟁을 시작했다. 시장이 자신의 긴축 의지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생각에 지난 8월 26일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회의에서 볼커를 연상시키는 짧지만 단호한 연설을 했다. 파월은 “볼커 취임 이전에 15년 동안 연준이 물가 안정을 위해 여러차례 시도를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며 “볼커처럼 오랜 기간 매우 엄격한 긴축통화 정책이 물가상승을 억제하고 하향 안정시키는 데 궁극적으로 필요한 조치”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 전문가들은 파월의 이러한 발언이 볼커가 전례에 따르다가 초반에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리디아 부서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파월은 금융긴축을 섣부르게 완화하면 연준의 인플레이션 대응 노력과 신뢰를 잠식할 수 있다는 위험을 고려해, 인플레이션 억제 효과를 내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긴축 입장을 고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고금리 오래갈 듯

파월이 볼커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시사하면서, 볼커 때처럼 미국 금리를 내년 초까지 급격하게 인상한 뒤 2년 이상 고금리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볼커의 인플레이션 전쟁이 5년 9개월 걸린 반면, 파월의 전쟁은 이제 7개월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파월은 “인플레이션은 가장 감당하기 힘든 사람들, 즉 빈곤층, 실업자, 고령층에게 가장 심하게 다가온다”며 볼커의 발언을 반복하고, “세계는 고금리의 뉴노멀(새로운 정상 상태)에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파월의 인플레이션 전쟁이 그의 임기가 끝나는 2026년까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 내년에도 1300~1400원대 예상”

임현욱 ‘뱅크 오브 아메리카’ 서울지점 공동대표 인터뷰

임현욱 뱅크 오브 아메리카 서울지점 공동대표

미국의 금리 인상은 한국의 원·달러 환율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한국에 투자했던 국제금융자본들이 원화를 달러로 바꿔, 한국보다 금리가 높은 미국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서울 외환시장에서는 원화가 넘치고 달러가 부족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 미국이 고금리 행진을 이어갈 경우 원·달러 환율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미국 금융그룹인 ‘뱅크 오브 아메리카(BofA)’ 서울지점의 임현욱 공동대표는 25년째 외환 트레이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향후 환율 변화와 관련해 연착륙과 경착륙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연착륙 시나리오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 연말에 4.5%로 올라간 뒤 내년 2월에 4.75~5.00%에서 정점에 도달하는 경우이다. 이 금리 수준에서 물가가 잡히면 미국 연준이 2024년부터 금리를 서서히 인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원·달러 환율은 올해 연말에 1달러당 1450~1470원 정도에서 안착한 뒤 내년에 외환 수급 상황이 갑자기 바뀌지 않으면 3월 1450원, 6월 1420원, 9월 1390원, 12월 1350원 수준으로 서서히 하락할 것으로 임 대표는 전망했다. 임 대표는 “한국이 약 8000억달러에 달하는 가용 외환보유액 덕분에 외환 유동성(자금) 위기에 처할 가능성은 없지만, 미국이 금리 인상을 이어가고 국제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는 한 내년에 환율이 1300원 이하로 떨어지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경착륙 시나리오는 미국이 현재의 예상을 넘어 기준 금리를 5% 넘게 올리는 경우이다. 이 경우 신흥국 가운데 해외채무가 많고 외환보유액이 적은 나라에서 외환 위기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전염 효과 때문에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더 큰 변동성이 나타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원·달러 환율은 1달러당 1500~1600원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임 대표는 예상했다. 만약 미국 연준이 물가 안정이 아니라 이러한 금융 불안 때문에 금리를 낮출 경우 해외로 빠져 나갔던 투자 자금이 한국으로 돌아오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