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가 급등하면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부동산 개발 사업이 늘어나고, 지방 중소 건설사들이 부도 위기로 몰리는 등 부동산발(發) 경제 위기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부동산 개발 사업에 돈을 댔던 증권사 등 금융사들로 부실이 옮아붙을 가능성이 커지는 중이다. 금융권이 움츠러들면서 시중 단기 자금이 말라, 멀쩡한 회사들까지 대출난을 겪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2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금융권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잔액은 지난 6월 기준 112조원에 달한다. 만기가 짧은 PF 유동화증권 등까지 합치면 150조원대로 불어난다.
◇커지는 부동산PF발 위기론…150조 부동산PF 부실 터지나
최근 발생한 춘천의 테마파크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미상환 사태는 시장의 불안감에 불을 질렀다. 이 사업을 담당한 강원도 산하 강원중도개발공사(GJC)는 사업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특수목적법인(SPC·아이원제일차)을 설립하고 2050억원 규모의 ABCP를 발행했다. 강원도가 지급 보증을 서면서 국고채 수준으로 대우받았다.
그러나 강원도는 지난달 29일 만기가 다가오자 기관들에 대출채권 상환 불가 입장을 밝히고, 법원에 중도개발공사 회생을 신청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이원제일차의 신용 등급은 한순간에 ‘A1′에서 ‘C’로 강등됐고, 2050억원의 ABCP는 지난 6일 최종 부도 처리됐다. 지자체가 보증한 어음까지 부도가 나는 상황이 닥치면서 ‘돈값’은 더 가파르게 치솟았다.
2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기업어음(CP·91일물) 금리는 4.1%로 마감했다. 4%를 넘은 것은 금융 위기 당시인 2009년 1월 말 이후 처음이다. 신용스프레드(회사채와 국고채 금리 차이)도 올 초 대비 2배로 벌어져, 일반 기업들의 차입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올 3분기 신용 등급 A 회사채 중 매각되지 않은 것이 58%에 달한다. 작년 같은 기간에는 이 비율이 1%였다.
◇ 레고랜드 부도 충격에 자금난, 회사채 발행도 어려워져… 건설주·증권주 추풍낙엽
논란이 계속되자 강원도는 지난 19일 2050억원에 대한 예산을 편성해 늦어도 내년 1월 29일까지 갚겠다고 했지만 시장 불안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6월 기준 은행권과 제2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112조2000억원이나, 개발 사업을 기초자산으로 증권사가 발행한 유동화증권까지 포함하면 규모가 152조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 때 개발 사업에 돈을 대주고 짭짤한 수익을 얻던 금융사들은 패닉에 빠졌다. 이번에 부도가 난 레고랜드 ABCP에도 10개 주요 증권사가 빠짐없이 투자했다. 20일 국내 주식시장에서 19개 증권사를 모아놓은 ‘코스피 증권’ 지수는 3.43% 하락했다. 다올투자증권(-9.1%), 키움증권(-8.26%), 유진투자증권(-7.27%) 등의 낙폭이 컸다.
충남 지역 6위 종합건설업체 우석건설이 최근 1차 부도가 나고, PF 우발채무 때문에 롯데건설이 18일 2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등 부동산발 도미노 위기 우려도 커지면서 이날 태영건설(-6.67%), 금호건설(-5.52%), 동부건설(-4.65%) 등도 두드러진 하락세를 보였다.
◇“건설사, 증권사 부도 악성 루머 단속한다”
금융시장에서 “레고랜드 사태와 관련된 증권사 가운데 일부는 부도가 나고, 일부는 팔린다”는 소문이 무성해지자, 금융감독원은 이날 “악성 루머이고, 주가 조작에 악용될 여지가 있어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금융위원회도 이날 1조6000억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를 통해 회사채 매입을 조속히 재개하겠다며 불안 확산을 차단하는 데 나섰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사태로 시장 불안이 지방채 및 PF 등 자금 시장 전반으로 확대돼 투자 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여타 PF 또한 조달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