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왼쪽) 금융위원장과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이 지난 19일 열린 한 언론사 행사장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레고랜드 사태로 경색된 자금 시장 혈맥을 뚫기 위한 금융 당국의 움직임이 빨라진 가운데, 정책 조율 과정에서 증권 업계와 금융 당국 사이에 파열음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대형 증권사 9곳이 1조원 규모의 펀드를 꾸려 중소형 증권사가 들고 있는 채권을 사주도록 하는 아이디어가 나온 모양인데, 대형사들이 난색을 보이고 있는 것이지요.

‘셀프 매입’ 또는 ‘제2의 채권시장안정펀드’라 불리는 아이디어는 이렇습니다. 증권사가 매입 보장을 했거나 신용 보강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중 이달 만기가 돌아오는 게 6조7000억원어치이고 올해 말까지는 27조원이 넘습니다. 당장 차환(새로 채권을 발행해 기존 채권을 상환하는 것)이 어려운 중소형 증권사가 꽤 있으므로, 큰 회사들이 이걸 사는 데 일단 돈을 대주자는 것입니다. 증권사 하나가 쓰러지면 업계에 연쇄 파장이 미칠 수 있는 만큼, 대형사들이 십시일반으로 증소형사의 급한 불을 꺼주자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정부가 지난 주말 내놓은 ‘50조원+알파’ 패키지에도 중소형 증권사 지원책이 들어 있긴 하지만, 당국으로선 기다리지 말고 다양한 자금줄을 마련해 뭐든 빨리 집행하는 게 좋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많게는 1000억원씩 할당받게 생긴 대형사들 반발이 심상치 않습니다. “지금 어느 회사를 막론하고 돈 급하지 않은 곳이 없는데 다른 회사 돕게 돈 내란 것이냐” “사들인 ABCP에 만에 하나 부실이라도 생기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느냐” “평시에는 경쟁 관계인데 업계 경쟁사를 돕는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등등 많은 얘기가 나옵니다. 한마디로 배임 소지가 있다는 것이지요. 당국도 이런 논란을 알기에 정부 주도로 팔 비트는 모양새가 되지 않도록 ‘업계 자율 협약’ 식으로 만들어 보려는 것 같습니다. 사흘 새 세 차례 모였지만 답이 나오지 않아 일단 26일 금융위원회 발표에선 ‘업계 차원의 시장 기능 회복 노력’ 정도로 담겼습니다.

자금 시장이 이렇게까지 되도록 당국이 여태 뭐했느냐는 비판은 차치하고라도, 지금부터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돈 되면 하지 말래도 하는 게 시장 논리입니다. ‘코로나 초기에 정부의 지원을 받았으니, 이제 돈 좀 풀어라’ 같은 명분을 앞세우기보다 시장 논리로 지원책을 디자인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