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 화폐로 채택하고 정부 재정으로 비트코인에 투자한 엘살바도르가 코인 가격 급락으로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처했다. 사진은 15일(현지 시각)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열린 비트코인 관련 행사에서 한 참가자가 이야기하는 모습. /로이터

세계 3위 가상 화폐 거래소인 FTX가 최근 6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규모의 빚을 남기고 파산한 여파로 비트코인 등 주요 가상 화폐 가격이 열흘 동안 20% 넘게 폭락하는 등 가상 화폐 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특히 FTX를 무너뜨린 ‘유동성 부족’ 의혹이 다른 대형 거래소에까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어 가상 화폐 업계 전반이 위기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가상 화폐 정보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가상 화폐 시가총액 1위 비트코인 가격은 이날 오후 3시 현재 1만6917달러(약 2243만원)를 기록하고 있다. 열흘 전인 지난 6일(2만1162달러)보다 20.1% 떨어진 것이다. 시총 2위인 이더리움 가격도 같은 기간 22% 급락했다. 양대 코인 가격은 모두 지난 8~10일을 전후해 급격히 떨어졌는데, 이는 글로벌 가상 화폐 거래소 FTX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며 뱅크런(투자자의 대규모 인출)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또 다른 거래소도 ‘돈 돌려막기’ 의혹

FTX 사태는 지난 2일(현지 시각) 가상 화폐 전문 매체 코인데스크가 FTX의 재정 건전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FTX가 계열사와 내부 거래를 통해 코인 유통량을 늘려왔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불안감을 느낀 투자자들이 사흘 동안 FTX에서 가상 화폐와 현금 60억달러(약 8조원)어치를 인출했고, 미 금융 당국도 조사에 착수했다. 궁지에 몰린 FTX는 11일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는데, 남긴 부채가 최대 66조원 수준이었다. 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부도였다.

FTX 퇴출 충격이 가시기도 전인 지난 13일엔 거래량 기준 세계 15위권 가상화폐 거래소 ‘크립토닷컴’에도 유동성 문제가 불거졌다. 크립토닷컴 측이 최근 보유하고 있던 코인 5000억원어치를 다른 거래소에 송금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는데, 이를 두고 유동성이 부족한 거래소끼리 서로 ‘돌려막기’를 해준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크립토닷컴 측은 “실수로 송금됐다”고 해명했지만, 크립토닷컴이 발행한 코인 ‘크로노스’의 가격이 14일 하루에만 26% 이상 급락하는 등 투자자 불안감은 증폭됐다. 금융투자업계에선 “거래소들의 ‘도미노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FTX 접속자 중 한국인 1위…국내 투자자 피해 우려도

가상 화폐 거래소 위기의 범위가 확산되는 와중에, FTX 부도의 심각성이 당초 예상보다 더 크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FTX 계좌에 가상 화폐나 현금을 맡겨놓은 고객(채권자)이 원래 알려진 숫자인 10만명의 10배인 100만명에 달할 수 있다는 외신 기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은 무담보 후순위 채권자로 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한다. WSJ는 “FTX CEO인 샘 뱅크먼프리드가 신규 자금 조달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성공하진 못했다”고 했다.

FTX 부도로 인한 국내 피해자가 다수 나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한 달간 FTX 거래소 사이트에 PC로 접속한 사람들 중 접속 지역 기준으로 한국 비율이 7.1% 가장 높았다는 것이다. 접속 사이트 자체가 다른 미국 이용자는 제외하고 다른 나라들만 계산한 수치다. 다만 국내 투자자 피해 규모가 별도로 집계되진 않았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테라 코인 붕괴 사태와 셀시어스 등 가상 화폐 대출업체의 파산에 이어 FTX의 파산신청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가상 화폐 생태계의 생존 능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