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코스닥 상위 100대 기업의 약 4분의 1이 코스피 시장으로 옮겨갔고, 그 여파로 코스피와 코스닥 상위 기업 간 시가총액 격차가 더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닥은 지난 1996년 ‘한국의 나스닥’을 목표로 출범했지만, 애플·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이 이끄는 나스닥과는 달리 사실상 ‘코스피 2부 리그’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스닥 상장사 CEO들도 “시장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002년부터 이날까지 20년간 코스닥 시장에서 코스피 시장으로 이전 상장한 기업은 총 41곳이다. 그중 코스닥에서 시가총액 상위 100위 안에 든 업체는 24곳이었다. 코스닥 100대 기업 네 곳 중 한 곳꼴로 코스피로 짐을 싸서 옮긴 것이다. 특히 코스닥 대장주(시총 1위)였던 네이버가 2008년, 셀트리온은 2018년에 코스닥에서 ‘탈출 버튼’을 눌렀다. 코스닥 시총 2위였던 카카오, LG유플러스, 기업은행, 강원랜드도 코스피로 넘어갔다.

◇코스닥 상위 기업 시총, 코스피의 8.7%…나스닥은 뉴욕거래소의 92%

덩치가 큰 주요 기업을 코스피에 뺏기다 보니, 코스닥 상위 기업들의 시총은 20년째 코스피의 10분의 1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2년 코스닥 상위 100사 시총 합계는 약 26조원으로 코스피 상위 100곳(228조원)의 11% 수준이었는데, 지금 이 비율은 8.7%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현재 코스닥 시총 1위 기업인 에코프로비엠은 코스피에선 31위 수준이다.

미국 나스닥은 다르다. 미 나스닥 100대 기업의 시총 합계는 약 16조7000억달러(2경2000조원)으로 한국 코스피에 대응되는 뉴욕증권거래소(NYSE) 100대 기업 시총(18조2000억달러)과 엇비슷한(92%) 수준이다. 특히 미국 증시 전체에서 시총 1~4등인 애플·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 등 전 세계를 주름잡는 IT 기업들이 모두 나스닥에 포진해 있다. 한국 개인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사는 미국 주식인 전기차 업체 테슬라도 나스닥 기업이다.

우량 기업들이 코스닥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투자자의 돈이 코스피 시장에 몰리기 때문이다. 펀드평가사 제로인 통계에 따르면, 코스피나 코스피200 지수를 벤치마크로 삼으며 주로 코스피 기업에 투자하는 국내 공모펀드 수는 1062개이고 설정액은 약 28조원이다. 반면, 코스닥·코스닥150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 수는 25개에 불과하고 설정액도 6000억원 수준이다. 기업 입장에선 코스피로 넘어갈 경우 40배가 넘는 투자 기회를 얻는 셈이다.

코스닥 전반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는 상황을 악화시킨다. 코스닥에 건실한 기업들도 많지만, 이른바 작전세력이 주가를 부양시켜 ‘한탕’ 하고 빠지는 용도로 쓰는 부실 기업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개미 투자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는 일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작년 시세 조종 등 불공정거래 109건 중 71건(65%)이 코스닥에서 발생했다.

◇거래소, 코스닥 알짜 기업 51개만 선별…”투심 기대”

전문가들은 “코스닥 시장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다보니 여러 사고가 생기고, 그런 모습이 투자자들의 발길을 돌리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래 가능성을 보는 기술 중심 기업들인 만큼 재무 지표에 대한 기준은 완화해야겠지만, 말만 번지르르하고 실체가 없는 기업들은 최대한 걸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관 증권사가 상장 적격성을 보증하고, 대신 흥행에 실패하거나 사고가 났을 때 그에 따르는 평판 하락을 감수하는 경쟁 구조가 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는 최근 코스닥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1600개가 넘는 코스닥 기업 중 ‘알짜 기업’ 51개만 추린 ‘코스닥 글로벌 세그먼트(부문)’ 지수를 신설했다. 에코프로비엠, 셀트리온헬스케어, 카카오게임즈 등이 포함돼 있다. 코스피 우량 기업과 경쟁할 만한 간판 기업을 앞세운 것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재무구조와 기업 전망이 우수한 기업들을 글로벌 세그먼트로 잘 선별해 코스닥에 대한 투자자들의 투심을 북돋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