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서울 종로구 흥국생명 본사. /연합뉴스

태광산업의 흥국생명 지원에 반기를 든 트러스톤자산운용이 13일 태광산업 이사진에게 내용증명을 보냈다. 최대주주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개인을 위해 지분관계도 없는 회사에 부당 지원하지 말고, 회사와 일반 주주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내려달라는 것이다. 만약 이사회에서 흥국생명 지원 결정을 내릴 경우,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14일로 예정된 태광산업 이사회에서는 흥국생명이 추진하는 4000억원 유상증자 참여와 관련된 안건이 논의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날 트러스톤이 태광산업 이사회에 보낸 내용증명 골자는, 회사 측이 계획하는 흥국생명 유상증자 참여가 상법과 공정거래법 등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트러스톤 측은 “상법 제542조의9 제1항에서는 상장회사가 지분 10% 이상을 소유한 주요주주 및 특수관계인에게 자금 지원적 성격의 증권 매입을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며 “흥국생명은 태광산업의 최대주주인 이호진 회장의 특수관계인에 해당하므로, 태광산업이 흥국생명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흥국생명의 유상증자에 참여한다면 상법에서 금지하는 신용공여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찬성한 이사는 상법 제624조의2에 따라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고, 상법 제634조의3에 따라 태광산업 또한 벌금을 물게 될 것이라는 게 트러스톤 측의 해석이다. 회사 측은 “이 경우 주주대표소송을 통해 이사에게 책임을 묻는 등 법적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트러스톤은 유상증자 참여가 공정거래법상 계열회사 부당지원 행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밝혔다. 공정거래법상 계열회사의 지분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은 회사가 제3자 배정 방식을 통해 해당 계열회사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제3자가 인수하지 않을 정도의 고가로 주식을 인수하는 경우 ‘계열회사 부당지원행위’에 해당한다. 회사 측은 “이번 유상증자의 거래조건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긴급한 자금조달이 필요한 흥국생명 내부 상황과 높은 시장금리를 고려하면 이번 신주 발행이 시장가격보다 상당히 낮은 금액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외부 제3자의 인수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계열회사 부당지원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2018년 12월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횡령·배임 혐의와 관련한 파기환송심 1차 공판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태광산업은 이 전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지분 54.53%를 보유한 상장사이고, 흥국생명은 이 전 회장 일가가 100% 보유한 비상장사다./뉴스1

태광산업 지분 5.8%를 보유한 주요주주 트러스톤이 강한 반기를 들고 나섰고, 경제개혁연대와 사단법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등 시민단체들도 잇따라 반대 성명을 내면서 태광산업 이사진이 계획대로 안건을 처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흥국생명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일가가 100% 보유한 비상장사로, 지난달 조기상환을 맞았던 5억 달러(약 5600억원) 규모 외화 신종자본증권 조기 상환권(콜옵션) 논란을 일으켰다. 치솟은 금리 때문에 신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예상되자,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가 입장을 번복했다. 5600억원 중 4000억원을 시중은행이 RP(환매조건부채권)를 통해 긴급 지원했는데, 만기가 돌아오는 RP 상환에 돈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 돈을 같은 태광그룹 우산 아래 있는 계열회사 태광산업이 지원하려는 것이다. 상장사인 태광산업은 흥국생명 지분이 한 주도 없는 상태에서 지원에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