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산업이 태광그룹 계열사인 흥국생명 지원에 나서려고 했지만, 무산됐다. 태광산업은 전날인 14일 공시를 통해 “흥국생명 전환우선주 인수를 검토했으나, 상장사로서 기존 사업 혁신 및 신사업 개척에 집중하기 위해 인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흥국생명 유상증자 참여에 관해 검토 중이나 확정된 게 없다”고 공시한 지 닷새 만이다. 15일 태광산업 주가는 전날 대비 2.61% 오른 74만8000원에 마감했다. 문제가 불거진 이후 줄곧 주식을 팔았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돌아온 것이 눈에 띈다.
최근 시장에서는 태광산업이 5억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자본으로 인정받는 영구채의 일종) 조기 상환으로 지급여력(RBC) 비율 맞추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흥국생명에 4000억원 정도를 지원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흥국생명이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면 태광산업이 전환우선주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댈 것으로 예상됐다.
◇계열사 지원 막은 행동주의 펀드
문제는 태광산업이 흥국생명 지분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은 회사이고, 흥국생명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라는 점이다. 태광산업 주주들이 반발했다. 태광산업 지분을 5.8% 보유한 행동주의 펀드 트러스톤자산운용이 이사회에 내용증명을 통해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했다. 경제개혁연대와 사단법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등 시민사회 단체들도 논평을 내고 반대했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흥국생명에 급전이 필요해진 것은 5년 전 발행한 5억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때문이다. 통상 신종자본증권은 발행 5년 후 조기상환권(콜옵션) 행사를 통해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돌려주는 게 관행인데, 갑자기 2배 넘게 치솟은 금리 탓에 자금 조달이 부담스럽자 조기 상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금융 당국에서도 일단 허용했지만, 레고랜드 사태로 위축된 채권 시장 불안이 가중되자 입장을 바꿔 조기 상환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5600억원 중 4000억원을 은행들이 RP(환매조건부채권)를 통해 긴급 지원했다. RBC 비율도 권고치(150%) 아래로 떨어졌다. 이 때문에 자금 수혈이 필요했다.
◇태광그룹 비상장 계열사가 지원키로
흥국생명은 태광산업의 지원 대신 2800억원을 태광그룹 비상장 계열사들로부터 갹출받아 급한 자금을 마련키로 했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과거에는 상장사를 동원해 부실 계열사를 지원해도 시장에서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이런 일이 쌓여서 한국 시장 저평가 요인이 됐다”며 “이번 일은 자본 시장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