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다니는 한모(52)씨는 2015년 2월 서울 마포구에 집을 장만하면서 연 3.7% 고정금리 조건으로 20년 만기 2억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 당시 변동금리 대출 금리는 연 3.17%로 고정금리보다 낮았다. 하지만 금융 당국이 고정금리 대출을 장려한 데다 은행도 “금리가 올라갈 때가 됐다”고 해서 고정금리 대출을 선택했다. 그런데 변동금리가 계속 떨어지더니 2020년에는 연 2.38%까지 낮아졌다. 만약 변동금리로 빌렸다면 한 달에 이자를 20만원 가까이 아낄 수 있었다. 한씨는 “정부와 은행 말 믿고 고정금리를 선택했는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고 했다.

금융 당국이 “금리 변동 영향을 덜 받는 고정금리 대출을 늘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거나, “금리가 오를 테니 변동금리를 고정금리로 갈아탈 수 있도록 해주겠다”면서 고정금리형 정책 금융 상품을 내놓을 때마다 거꾸로 금리가 하락하는 상황이 되풀이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 당국을 믿고 고정금리를 선택하면 금리 ‘상투’를 잡아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은 작년 하반기부터 다시 고정금리 대출을 권하고 있다. 시중에서는 “청개구리처럼 굴어야 손해 안 본다”는 말까지 나온다.

◇고정금리 대출이 무조건 유리한가?

지난해 금리가 뛰기 시작하자 금융 당국은 변동금리보다는 고정금리를 선택하는 편이 현명하다며 고정금리 대출을 적극 유도했다.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을 연 3% 후반대 고정금리로 갈아탈 수 있는 정책 상품인 안심전환대출을 출시하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5~2016년에도 현재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한국은행이 글로벌 금융 위기 때 기준금리를 2%까지 낮췄다가 2010년 7월부터 금리 인상을 시작해 2011년 6월까지 5차례에 걸쳐 3.25%까지 올렸다. 당시 금융 당국은 고정금리가 대출자에게 유리하다고 홍보했고, 2011년 5% 정도였던 고정금리 대출 비율은 2015년 34%까지 급증했다. 하지만 그렇게 늘어난 고정금리 대출자들은 글로벌 불황으로 2016년에 기준금리가 다시 1.25%까지 떨어지면서 변동금리 대출자들보다 비싼 이자를 물게 됐다.

당시 금융 당국은 2015년 3월 처음으로 안심전환대출을 실시하며, 시중 금리보다 훨씬 낮은 2.5~2.6% 수준의 고정금리로 갈아탈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당시 1.75%였던 기준 금리는 2016년 6월 1.25%까지 0.5%포인트 더 내려갔고, 시중은행에서 더 낮은 금리의 상품이 나오자 가입자들이 안심전환대출을 대거 해지했다. 전체 신청한 32만7000가구 중 지난해 상반기까지 약 50%가 이 상품을 중도에 해지하고 다른 대출 상품으로 갈아탄 것으로 집계됐다. 금액 기준으로는 31조7000억원 중 34.6%인 11조원 정도가 빠져나갔다.

시장에서는 “금융 당국의 ‘시장 개입’이 오히려 금리가 꼭짓점이라는 신호로 분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익 서강대 교수는 “지난해 급등한 금리가 단기적으로 살짝 더 올라갈 수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상승보다는 하락 압력이 훨씬 높은 상태”라며 “지금 장기 대출을 받는다면 고정금리보다 변동금리 대출을 받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고 했다.

◇변동금리는 금리 뛰면 이자 부담 급증

올해에도 금융 당국의 개입 이후 곧 금리가 떨어지는 패턴이 반복될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금리 인상으로 인한 가계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당국의 대책들이 ‘금리 꼭짓점 신호’로 작용했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면서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고, 메르스나 코로나 같은 사태가 터져 금리를 갑자기 내리는 상황이 발생할 거라고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쉽게 일반화할 수 없는 특이한 일들이 겹쳐 발생한 우연한 현상이란 의미다.

전문가들은 변동금리와 고정금리를 선택할 때는 일반론적으로 접근하라고 추천한다. 장기적으로 금리가 오르내리는 사이클은 반복되기 때문에 이런 위험을 매번 부담하지 않으려면 고정금리가 좋지만, 금리를 감내할 여력이 있다면 변동금리를 선택하는 것이 맞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