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 테마주라고는 했지만, 주가가 계속 뛰는 거예요. 진짜 대박 나려나 하는 마음에 급하게 돈 넣었죠. 지금요? 마이너스 80%가 넘습니다.”
2021년 봄, ‘윤석열 테마주’라던 한 코스닥 상장사에 투자했던 은퇴 생활자 정모(65)씨는 쓰린 속을 부여잡고 있다. 무섭게 오르는 주식이 더 오를 것 같은 기대감과 “나만 뒷짐 지고 있나” 하는 불안감에 별다른 분석도 없이 급등주에 몰빵 투자를 했다가 1600만원을 날렸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는 말이 국내 증시에서 매년 반복되고 있다. 그해 가장 많이 오른 종목을 샀던 투자자들이 다음 해 쓴맛을 보는 패턴이 이어지고 있다. 테마주들이 기승을 부리고, 시장의 쏠림 현상이 커서 주가가 치솟았던 급등주들이 다음 해에는 급락주 신세가 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본지가 NH투자증권과 함께 코스피와 코스닥 수익률 상위 종목들의 다음 해 주가 등락률을 추적해본 결과, 2021년도 주가 상승률이 상위 10등에 들어갔던 종목들의 지난해 평균 수익률은 -69%에 달했다. 지난해 수익률 평균 석차는 2294등이었다. 전체 상장 종목(2412개)을 감안하면 바닥권이다.
◇지난해 대박 종목이 올해는 쪽박 종목
수익률 상위 100개 종목으로 확대해서 분석해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2021년 수익률 상위 100등의 지난해 수익률 평균은 -43.5%였다. 코스피와 코스닥지수 하락률보다 훨씬 컸다.
2016년 이후 6년간 같은 방식으로 분석해도 마찬가지였다. 수익률 상위 100개 기업은 이듬해 30% 이상 손실을 볼 확률이 무려 44%에 달했다. 로켓처럼 폭등했던 주식이 가파르게 고꾸라지는 모습은 지난해에 가장 뚜렷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주가지수가 급등했다가 기준 금리 인상이 시작되면서 썰물처럼 빠졌기 때문이다.
상승률 최상위 종목들에 ‘테마주’들이 많이 끼여 있는 것이 이런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적과 연결된 종목들이 아니기 때문에 투기성 자금이 한순간 몰렸다 빠지면서 주가가 춤을 춘다는 것이다.
2021년 급등주의 경우 메타버스, NFT(대체불가토큰), 대선 등 지금은 힘을 잃어버린 테마주들이 대부분이다. 최근 5년 사이 폭풍 같은 주가 상승으로 시장에서 회자됐던 종목들의 고점 대비 현재 하락률을 보면 신라젠 -94% 신풍제약 -90%, 박셀바이오 -88%, 위메이드맥스 -85% 등이다.
◇”거품 빠지는 올해도 반복될 것”
올해도 개미를 울리는 이런 패턴은 반복될까. 전문가들은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한다. 편득현 NH투자증권 WM마스터즈 전문위원은 “지난해 급등해 수익률 상위에 올랐던 하이드로리튬, 금양, 카나리아바이오, 공구우먼, 양지사 같은 종목들도 대개 기업 내용이나 실적이 뛰어나서 투자금이 몰린 게 아니라 테마주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앞선 주식들의 전철을 밟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경기가 침체 국면으로 들어서 상장사 전체의 이익이 쪼그라드는 지금 같은 국면에서는 특히 기업이익 대비 주가가 높게 형성됐던 종목들의 거품이 급속도로 빠질 위험이 크다.
신성호 전 IBK투자증권 대표는 “이익 규모에 비해서 주가가 지나치게 급등했던 테마주나 성장주들은 주가 평가 기준이 기업 이익으로 선회하는 지금 같은 때 더 큰 폭락을 맞을 수밖에 없다”며 “시장 전체 이익이 감소하는 때에는 이런 주식들은 서둘러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애널리스트들이 타성에 젖어 급등하는 종목을 감히 낮추어 평가하거나 매도를 권하지 못하는 분위기도 한몫하는 것으로 지적됐다.
그렇지만, “역시 한국 시장은 장기 투자가 답이 아니다”라거나 “단타만이 살길”이라는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구글 등 세계 주식시장에서 초우량주로 꼽히는 종목들도 최근 2년 새 반 토막이 났고, 테슬라 주가는 4분의 1 수준으로 주저앉는 등 급등주가 급락주로 변하는 현상은 국내 증시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강대권 라이프자산운용 대표는 “전년도 과열 급등주가 이듬해 급락 조정을 받는다는 사실은 오히려 투기로 얼룩진 한국 시장조차 장기적으로는 이성적인 가격 발견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라면서 “꾸준히 기업 가치를 높이는 기업을 찾아 좋은 가격에 투자해 장기 성과를 창출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