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급발진했네요. 전망 또 틀렸다고 욕먹겠어요. 하지만 이런 기세가 계속 가진 않을 겁니다.”
올해 증시가 ‘상저하고(상반기에 낮았다가 하반기에 높아짐)’가 되리라고 전망한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 임원은 17일 주가가 다소 꺾이자 이렇게 말했다.
9거래일 연속 내달리던 증시에 제동이 걸렸다. 4일부터 16일까지 8% 넘게 올랐던 코스피 지수가 17일에는 전날보다 0.85% 떨어진 2379.39로 마감했다. 대부분의 증권사들은 올해 상반기에는 주가가 약세를 보이다 하반기에 반등할 것으로 예상했다. 상반기 중 미국 등 각국의 금리 인상이 멈추고 경기 침체에 따른 기업 이익 감소세도 바닥을 칠 것이기 때문에 증시도 상반기엔 저조했다가 하반기로 갈수록 기를 펼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하지만 증시는 청개구리처럼 연초부터 뛰어올랐다. 국내뿐만 아니라 중화권과 유럽 증시도 마찬가지다.
◇상저하고라더니…청개구리 장세?
연초 주식시장이 뛴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꼽힌다. 미국 물가상승 둔화세가 뚜렷해지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속도가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이 커진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작년 12월 물가상승률이 6.5%로 13개월 만에 6%대로 내려오면서, 2주 앞으로 다가온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베이비스텝(금리 0.25%포인트 인상) 전망이 우세해졌기 때문이다.
둘째, 중국이 예상보다 빠른 작년 말 코로나 방역 전면 해제에 나서면서 중국 경제 회복이 예상보다 당겨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진 것이다. 지난해 3.0% 성장에 그친 중국 경제가 올해는 6%대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 속에 중국 경제가 다시 세계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후폭풍으로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을 겪으면서 침체 입구까지 들어간 것으로 보였던 유럽 경제가 예상 밖으로 선전하는 것도 호재다. 예상보다 따뜻한 겨울 날씨가 이어지면서 천연가스 가격이 하향 안정된 게 큰 도움이 됐다.
문제는 이 모든 호재가 한꺼번에 등장하면서 하반기로 예상됐던 랠리가 상반기로 앞당겨진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하반기 소비자물가 둔화 속도가 현저히 떨어져 ‘중물가-중금리’ 국면이 굳어진다면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주거나 박스권 장세가 될 소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외국인 주도, 개미들은 돈이 없다
개인과 외국인도 정반대로 뛰는 중이다. 주가가 오르자 개인들은 차익 실현에 나선 반면 외국인들이 이 물량을 대부분 받아내면서 주가를 밀어올렸다. 연초 이후 17일까지 외국인들은 코스피 시장에서 3조4000억원 넘는 순매수를, 개인은 3조6160억원어치 순매도를 기록했다.
외국인들은 대형주를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올해 외국인들이 순매수한 상위 종목은 1위가 삼성전자, 2위 SK하이닉스, 4위가 포스코 등이었다. 외국인 매수세에 지난 16일까지 삼성전자가 10% 상승하고 SK하이닉스(13.3%), 포스코(14.3%) 등이 급등세를 보였다. 거래소가 제공하는 KRX 지수 중에서는 KRX반도체(11.4%), KRX은행(24.2%), KRX철강(11%), KRX증권(15.5%), KRX금융(18.9%) 등 대형주가 포진한 지수가 가파르게 올랐다.
특히 외국인들은 16일까지 KB금융,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 주식을 총 7340억원어치 순매수해 하나금융지주, 신한지주 등의 주가가 연초 이후 26~27% 급등하기도 했다.
고금리를 주는 은행 예금에 뭉칫돈을 가져다 넣은 탓에 ‘총알’이 소진된 개인투자자들은 주가 하락에 베팅하고 있다. 개인들이 연초 이후 가장 많이 산 종목은 ‘KODEX 200선물인버스2X’ ETF로, 총 4500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코스피200 선물지수가 1만큼 하락하면 2배만큼 가격이 오르는 일명 ‘곱버스’ 상품이다. 투자자예탁금은 1년 전 대비 60%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교보증권 김형렬 리서치센터장은 “16일까지의 증시 상황은 작년 연말 극도의 비관적 쏠림 현상이 정상을 찾아간 것에 불과해 추세 전환이라고 보기엔 성급하다”며 “금리 인하기가 오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 여전히 증시 앞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