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연 3.5%로 끌어올린 지난 13일부터 시중 금리가 기준 금리를 밑도는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8일까지 4거래일째 이어지고 있다.

1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시중 금리의 지표가 되는 국고채 3년물 금리는 3.390%로 기준 금리를 0.1%포인트 이상 밑돌고 있다. 5년·10년·20년·30년·50년물까지 예외 없이 기준 금리보다 금리가 낮다.

이런 현상은 채권 시장 참가자들이 기준 금리 3.50%를 사실상 고점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이 금리를 더 높이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것이다. 채권 투자자들은 기준 금리보다도 못한 수익을 내기 시작한 국고채를 팔아치우고, 대신 한전채나 은행채, 회사채 등을 사들이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집계에 따르면, 새해 들어 17일까지 투자자들은 국채를 총 2조2199억원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은행채(8조5311억원)와 여전채 등 기타금융채(3조6120억원), 한전채를 중심으로 한 특수채(3조4786억원) 등을 순매수했다. 회사채도 4000억원 가까이 순매수했다. 단기 자금 시장에서 낮은 금리에 자금을 조달해 만기가 길고 금리가 높은 채권을 보유해 금리 차이만큼 이익을 얻어야 하는데, 최근 국고채 금리가 낮아지면서 국고채를 팔고 대신 금리가 높은 다른 채권을 사고 있는 것이다.

◇“늦어도 7개월 뒤 기준 금리 인하”

시중 금리가 기준 금리보다 앞서 떨어졌던 과거 사례에 비춰보면 늦어도 하반기에는 한은이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하이투자증권이 2000년 이후 국고채-기준 금리가 5거래일 이상 역전됐던 사례를 찾아봤더니 총 12번이었다. 이 중 기준 금리가 인하 국면이었던 때를 제외하고 지금처럼 금리 인상기이거나 금리 동결 기조가 유지되던 상황은 총 3번이었다. 2008년 3~4월, 2016년 2~6월, 2019년 3~6월이다. 당시 금리 역전 발생한 뒤 한은은 빠르면 3개월, 늦어도 7개월 뒤에는 기준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앞서나간 시장의 베팅이 결국 맞았던 셈이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와 달리 현재는 물가 수준이 여전히 높고, 한은의 물가 목표치(2%) 진입도 당장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서도 “그렇지만 한은의 기조는 분명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은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불과 2개월 만에 2.1%에서 1.7%로 0.4%포인트 낮춰 잡았고,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3.6%로 더는 올리지 않으면서 추가 긴축 필요성이 상당히 낮아졌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이번에도 시장이 틀리지 않는다면, 3개월 뒤 금리 인하는 어려울지 몰라도 7개월 뒤에는 기준 금리 인하를 예상해 볼 수 있다”고 했다.

다음 달 1일로 다가온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 금리 인상 폭이 줄어들어 0.25%포인트 인상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럴 경우 다음 달 23일로 예정된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도 영향을 받아 속도를 늦추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기관 중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0.6%로 가장 비관적으로 보는 노무라그룹은 “한은이 오는 5월부터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국채 팔고 은행채·한전채 산다

기준 금리보다 낮아진 국고채 3년물 금리의 경우 벌써 두 달째 기관들의 자금 조달 금리인 양도성예금증서(CD·91일물) 금리를 밑돌고 있다. 최근에는 역전 폭이 0.5%포인트 이상 벌어지면서 국채 순매도가 늘어나고 있다. 대신 은행채 등 우량 채권 매수가 증가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A등급 이하 비우량 채권 시장까지는 아직 수요가 몰리질 않고 있다. 17일 AA+ 등급인 LG화학이 총 4000억원 회사채 발행 수요 예측을 실시해 3조8000억원이 넘는 주문을 받은 데 비해, 같은 날 동종업계 A0등급인 효성화학은 1200억원 모집에 주문을 전혀 받지 못했다.

정혜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우량 등급 회사채가 역대 최대 규모 자금 모집에 성공하고 있는 반면, 비우량 등급 회사채에 대한 투자 심리는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며 “하위 등급까지 수요가 확산되는 것을 기대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