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글로벌 채권 시장이 대호황을 보이고 있다. 지난 18일까지 회사채와 각국이 발행한 정부채가 총 5860억달러(약 723조원)어치 발행된 것으로 집계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최근 10년 새 연초 발행 규모로는 최대를 기록했다. 미국 등 주요국의 물가 상승세가 작년 말부터 꺾이고,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기 시작하면서 채권 시장으로 돈이 몰리고 있는 중이다. 미국의 투자등급 채권의 경우 올 들어서만 10%대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해외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들도 이런 흐름에 올라타고 있다. 서학개미들의 순매수 상위 종목을 살펴보면, 채권형 상장지수펀드(ETF)가 테슬라 순매수액의 80%에 육박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지금부터 채권형 ETF 투자를 시작한다면 기대만큼 수익을 내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경기 침체가 예고된 만큼 채권 투자 비중을 늘리는 게 맞는 방향이긴 하지만, 채권 금리가 추가로 더 떨어지기는 어려운 수준까지 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섣부른 추격 매수는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테슬라만 찾던 서학개미들도, 채권 담았다
해외 투자 동향을 집계하는 한국예탁결제원 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23일까지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해외 종목은 역시 테슬라(3억1477만 달러)였다. 2위는 반도체 지수 하락 폭의 3배 수익을 얻는 ETF, 3위는 애플이어서 기존 선호 종목과 큰 변동이 없었다.
하지만 순매수 상위 20위에 이름을 올린 종목들을 보면 손바뀜을 감지할 수 있다. 채권형 ETF가 8개나 들어섰다. 반에크 JP모건 신흥국 현지통화 채권 ETF(EMLC)가 6위, 아이셰어즈 아이박스 USD 하이일드 회사채 ETF(HYG)가 7위, JP모건 울드라숏 인컴 ETF(JPST)가 10위 등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장기채와 단기채, 하이일드 회사채 등 투자 대상 채권도 다양하다. 20위권 안에도 달러화로 표시된 신흥국 채권이나 미국 초장기채, 투자등급 회사채, 단기국채 ETF 등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 예년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상위 20위에 오른 채권형 ETF 순매수 금액을 모두 합치면 총 2억5010만달러(약 3089억원)로 전체 2위와 3위 종목을 넘어선 것은 물론이고, 테슬라 순매수액의 80%에 육박한다. 이들이 투자 바구니에 담은 순매수 상위 채권형 ETF는 연초 이후 3~6%대 수익률을 내고 있다.
최창규 삼성자산운용 ETF컨설팅본부장은 “작년에는 금리 인상 리스크가 남아있어 고금리 채권을 만기까지 들고 가겠다는 만기 매칭형 ETF나 초단기채 ETF가 주목받았는데, 지금은 금리가 곧 방향을 틀 것이라는 기대가 퍼져 장기채권 상품이 주류가 되고 있다”고 했다.
◇”채권 가격 추가 급등 어렵다” 의견도
채권 투자에 나선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이 미국 국채로 쏠리는 것은 현재 만기가 같은 국채라도 미국채 수익률이 한국보다 높기 때문이다. 미국과 한국의 기준금리 역전 폭이 1%포인트 벌어지며 나타난 현상이다. 만기까지 보유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자 수익이 상대적으로 높고, 향후 금리가 정상화됐을 때 누릴 가격 상승폭도 더 클 것이라는 기대가 섞여 있다.
그러나 최근 석 달 사이 그랬던 것처럼 단기적으로 미국 국채 금리가 추가로 더 뚜렷이 꺾일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계속해서 더 높은 투자 수익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포릭 가비 ING 미주지역 리서치부문 대표는 최근 보고서에서 “닷컴 버블 시기에는 기준금리 대비 10년물 금리 격차가 1.5%포인트까지 확대됐지만, 대개는 금리 인상 주기가 다가오면 10년물 금리가 기준금리보다 0.75% 낮은 수준까지 떨어지곤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10년물 미국채 금리는 미국 기준금리(상단 4.5%)보다 1.0%포인트 낮은 3.5%대에 형성돼 있다. 역사적으로 봐도 금리가 선제적으로 충분히 낮아졌다는 주장이다. 그는 “다양한 요인을 고려할 때 10년물 금리가 3%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금리가 4%로 돌아가더라도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