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간편결제서비스인 애플페이의 국내 서비스 도입이 당초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 업계에선 금융감독원의 약관 심사가 끝나면 바로 서비스가 시작될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작년 말 약관 심사가 통과됐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금융당국이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어서 출시가 지연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애플페이가 출시되더라도 해결되지 않은 여러 문제가 쌓여 있어 시장 영향력이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애플페이 못 들어오는 이유는
지난해 하반기, 현대카드가 애플과 손잡고 애플페이를 출시한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당시 프랜차이즈 커피점, 마트 등에서 애플페이 결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기대감이 커졌는데, 금융당국은 해를 넘겨 지금까지도 애플페이 국내 서비스 가능 여부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가 가장 중점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부분은 국내 결제 정보가 해외 결제망으로 넘어가는 것을 허용하느냐는 문제다. 애플페이는 결제할 때 결제단말기에 갖다 대기만 해도 결제가 이뤄지는 근거리무선통신(NFC) 방식을 사용한다. 이를 위해 국제 결제망에서 주로 사용되는 EMV(유로페이, 마스터카드, 비자가 제정한 결제 표준)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마스터·비자 등 해외망을 거쳐 결제가 승인되는 구조다. 국내 사업자와 국내 소비자 사이에서 이뤄지는 결제가 해외 결제망을 거쳐 이뤄지는 것으로 국내에선 아직 이를 허용한 바가 없어 검토가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외 결제망으로의 이전이 금융회사의 업무 위탁 규정에 부합하고 해킹 유출 등에 대응하기 위한 안전장치도 잘 마련돼 있는지 등을 확인하고 있다”며 “이런 문제에 대해 질의 답변 등이 오가는 중이고, 현대카드 측의 답변이 마무리돼야 출시가 가능할 것”라고 설명했다.
단말기 보급 문제도 관건이다. 현재 국내 가맹점 중 애플페이 서비스에 필요한 NFC 방식을 사용할 수 있는 결제 단말기가 보급된 곳은 전체의 10%도 안 된다. 결국 거의 대부분 가맹점에 새로 단말기를 설치해야 하는데, 결제단말기 보급에 카드사 등이 금전적 지원을 하면 ‘부당한 보상금의 제공’으로 현행법 위반이 된다. 현대카드 측은 신기술을 적용한 간편결제 인프라 확산이 제휴사와의 배타적인 거래를 위한 계약 목적이 아니라 ‘공익적인 목적’이라는 이유로 당국을 설득 중이지만,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검토 마무리 단계”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지난 1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Lovely Apple”(사랑스러운 사과)이라는 문구와 함께 사과 8알이 담긴 사진을 올렸다. 업계는 이를 두고 현대카드가 애플페이의 정식 발매 일자를 암시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사과가 8개라는 점에서 ‘2월 8일’이 정식 서비스 시작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최근 되든 안 되든 빠른 결정을 내리자는 내부 결론이 나와, 속도감 있게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며 “검토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고 보면 된다”라고 했다.
다만 애플페이가 도입되더라도 시장에서 영향력이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지난 9일 “이미 보편화된 결제수단이 있는 상황에서 애플페이 도입이 스마트폰을 바꾸기 위한 큰 동기부여가 되기는 어렵다”며 “현대카드를 발급받으면서까지 애플페이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삼성페이가 별도의 수수료를 받지 않는 반면, 애플은 애플페이로 이뤄진 결제에 대해 건당 최대 0.15%의 수수료를 해당 카드사나 은행에 부과하고 있는 점이 약점으로 지적됐다. 현재 이 수수료를 누가 부담할지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으나, 결국은 고객이나 가맹점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카드사 입장에서 0.15%의 수수료는 상당한 부담으로, 이는 고객 혜택 축소나 높은 연회비 등의 방식으로 고객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라며 “그동안 없던 수수료에 대한 일부 도소매점이나 자영업 및 이용자의 심리적 반감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결제 서비스 많은 한국선 ‘글쎄’, 해외에선 ‘유용’
애플페이는 애플의 아이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용 간편결제 서비스다. 간편결제 서비스는 실물 카드 없이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는 시스템으로, 이를 사용하면 지갑을 따로 가지고 다녀도 되지 않아 점점 결제 시장에서 비중이 커지고 있다. 비록 애플페이가 아직 한국에선 허가를 받지 못해 사용이 불가능하지만, 아이폰 사용자들은 지금도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 별도의 간편결제 서비스 등을 통해 지금도 스마트폰만으로 결제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아이폰 사용자들 사이에서 애플페이가 도입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스마트폰 자체에 내장된 결제 기능이 다른 간편결제 회사들의 서비스를 이용할 때보다 편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결제 과정에서는 편의성과 신속성이 가장 중요시되기 때문에, 한두가지의 과정을 추가로 거쳐야 하는 타사의 간편결제 서비스보다는 자체 결제 기능이 더 많은 선호를 받게 된다. 특히 삼성의 갤럭시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국내 가장 넓은 결제망을 갖고 있는 삼성페이를 통해 국내 어디서든 무리 없이 간편결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아이폰에서는 삼성페이를 사용할 수 없어 불편을 겪고 있기도 하다.
비록 우리나라에선 아직 도입이 되지 않았지만, 총 63개국에서 출시돼 세계 간편결제 시장에서 2위를 차지할 만큼 글로벌한 결제망을 갖고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전세계 주요 국가에서는 아이폰만 들고 있어도 간편하게 결제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또 아이폰 사용자들이 다른 애플 제품에 대해서 높은 선호도를 보이는 특유의 성향도 한몫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