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대해 원유 금수(禁輸) 조치 등으로 제재하자, 러시아와 가까운 인도가 ‘정제 마진(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값을 뺀 이익)’으로 이득을 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값싼 러시아 원유로 정제유를 만들어 서방에 팔고 있기 때문이다. 불곰(러시아)을 때렸는데 코끼리(인도)가 반사이익을 보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5일(현지 시각) 지난달 인도가 미국에 수출한 가솔린·디젤유 물량이 하루당 8만9000배럴로 4년 만에 최대량을 기록했다고 시장정보업체 케이플러를 인용해 보도했다. 인도가 유럽에 파는 저(低)유황 디젤유 물량도 하루 17만2000배럴로 1년 3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인도의 서방에 대한 석유 제품 수출이 급증한 것이다.
그 배경엔 값싼 러시아 원유가 있다. 러시아산 우랄유는 현재 영국 북해산 브렌트유보다 배럴당 30~40달러 낮은 40달러 선에서 거래된다. 작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미국이 금수 조치를 발동하자 가격이 떨어졌고, 작년 말 서방이 우랄유에 대해 ‘배럴당 60달러’의 가격 상한을 도입하자 국제 유가와의 가격 차는 더 벌어졌다. 인도는 작년부터 값싼 러시아 원유 수입을 늘려, 이를 정제한 뒤 미국과 유럽에 팔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인도가 러시아 원유로 ‘정제 장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서방 금수 조치의 예외를 적용받거나 교묘하게 빠져나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은 해상으로 운반되는 러시아 원유·정제유에 대해 모두 수입을 금지했지만, 인도와 같은 제3국이 러시아 원유를 가지고 만든 정제유는 ‘러시아산 정제유’가 아닌 것으로 본다. 미국은 제3국을 통한 러시아 원유 수입도 금지하지만, 인도가 원산지를 숨기거나 다른 지역의 원유를 섞는 형태로 제재를 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서방 제재의 구멍이 실수나 미비가 아니라 의도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서울대 남아시아센터장 강성용 교수는 “미국은 러시아를 제재하면서도, 러시아산 원유 물량이 완전히 끊겨 국제 원유 시장이 타격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인도가 사실상 ‘원산지 세탁’을 하는 것을 알면서도 눈감아주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