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제 신약 개발을 추진하는 코스닥 상장 업체 파나진에서는 소액주주들과 경영진의 분쟁이 한창이다. 소액주주들은 김성기 대표의 배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 회사는 작년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13억원으로 전년 대비 68% 감소했는데, 이는 김 대표의 아내가 설립한 다른 바이오 업체에 핵심 기술을 내줬기 때문이라고 주주들은 주장하고 있다. 회사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지만, 주주들은 “오는 3월 주총에서 경영진 교체에 나설 것”이라고 벼르고 있다.

최근 국내 바이오 기업 소액주주들이 회사 경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비판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으로 신약 개발이 늦춰지고 회사 가치가 하락한다는 주장이다. 바이오 업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신약 개발’이 지지부진할수록 목돈을 투자해 애가 타는 주주들의 목소리도 커진다.

◇헬릭 주주들 “경영권 인수로 회사 깡통 될 것”

코스닥 상장사인 헬릭스미스는 소액주주들이 회사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대표적 기업이다. 회사가 개발 중인 통증 완화제 ‘엔젠시스’가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2019년 주가는 16만원(액면분할 등을 반영한 수정 주가 기준) 이상으로 치솟았지만, 이후 개발이 난관에 빠지자 지금은 90% 이상 폭락한 1만원대에 머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주들은 회사가 신약 개발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주주들의 돈으로 위험 자산에 투자했다고 비판해 왔다.

최근엔 회사의 경영권이 다른 바이오 회사인 카나리아바이오엠에 넘어간 것을 두고 주주와 회사가 다시 강대강으로 맞붙고 있다. 지난달 회사 측 추천 이사 선임안을 의결하기 위한 임시주총장에서는 입장하려는 소액주주들과 “인원 제한이 있다”는 회사 간에 승강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소액주주들은 “회사 측 이사 비율이 높아지면, 회사 자산이 카나리아 쪽으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회사는 “근거 없는 억측”이라고 반박한다.

◇”회사 회계장부 공개하라” 법정 소송까지

다른 업종에 비해 바이오 회사의 주주들이 특히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의약품 개발 여부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업계의 속성이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통상 신약 개발은 기초적인 안전성 검증부터 실제 환자군에 투여하는 임상시험까지 수년 이상이 걸린다. 개발에 성공하면 대박을 터뜨리지만, 실패하면 회사 존립 자체가 흔들린다. 목돈을 베팅한 개미 주주들은 자칫하면 전 재산을 날릴 수도 있기 때문에 회사의 ‘일방통행’을 견제하려 한다는 것이다.

바이오 업계에는 유독 다른 업종에 비해 개미 투자자들이 조직한 주주 단체가 많다. 대표적인 종목인 신라젠, 셀트리온, 헬릭스미스 등에 투자한 개미들은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뭉친다. 지난 2019년 출범해 외국인 공매도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소액주주 연합체 한국투자자연합회(한투연)도 셀트리온 개미 단체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첨예해진 ‘주주 대 회사’ 갈등은 종종 법정 싸움으로 번진다. 치매 치료제 개발 업체인 아이큐어의 소액주주들은 작년 12월 서울중앙지법에 “회사의 회계장부를 열람할 수 있게 해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회사 측의 무리한 전환사채 발행과 유상증자로 주가가 하락했다며 경영진 교체를 요구 중이다. 헬릭스미스 소액주주 측도 회사 측 이사 선임안이 일부 가결된 최근 임시주총 결과에 대해 “절차 위반으로 무효”라는 소송을 조만간 법원에 제기할 예정이다.

◇전문가 “회사 투명성 높이지만, 음모론 안 돼”

전문가들은 바이오 주주들이 뭉쳐 회사와 맞서는 것에 대해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모두 있다”는 입장이다. 소액주주들이 자칫 독단으로 흐를 수 있는 회사 경영진에 비판적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경영 투명화’ 차원에서 긍정적이지만, 간섭이 너무 많으면 회사 경영의 효율성이 침해된다는 것이다. 한 금투 업계 관계자는 “소액주주들이 신약 개발이 늦춰지는 이유에 대해 음모론적인 의혹 제기가 아니라 객관적인 근거에 기초해 판단한 뒤, 회사에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