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여파로 글로벌 증시가 하락하면서 국내에서도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산 ‘빚투(빚내서 투자)족’들이 담보로 맡긴 주식 가치가 떨어지면서 증시 전반의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 국내 6개 증권사의 담보 부족 계좌 수는 9708개로 집계됐다. 지난 2일(2078개)의 4.7배 정도로 급증했다. 담보 부족 계좌란 투자자가 담보로 맡긴 주식 가치가 일정 기준(통상 대출금의 140%) 이하로 떨어진 계좌를 뜻한다.

이런 계좌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대출을 받아 주식을 산 투자자가 추가 담보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증권사들은 강제로 주식을 처분하는 반대매매 절차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반대매매는 주식을 시세보다 싼 가격에 팔기 때문에 투자자가 큰 손실을 입게 되고, 대규모로 이뤄질 경우 주가를 끌어내리면서 증시에 충격을 주게 된다.

◇반대매매 ‘경고등’이 켜졌다

예를 들어 투자자 A씨가 자기 돈 1만원에 증권사 돈 1만원을 빌려 시가 2만원의 B주식을 1주 산 경우, 주가가 급락해 1만4000원 밑으로 떨어지면 담보 비율이 140% 아래로 떨어진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증권사는 대출금을 회수하기 위해 이 주식을 시세보다도 낮은 가격에 팔아버린다. 최악의 경우 A씨는 본인의 원금(1만원)을 대부분 날릴 수도 있다.

이런 반대매매 위험에 놓인 투자자들의 계좌가 SVB 사태로 급증한 것이다. 지난 14일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모두 올 들어 최대 낙폭을 기록하면서 각각 2.56%, 3.91% 급락했다. 다음 날인 15일 코스피는 1.3% 정도 올랐지만, 16일엔 다시 소폭(0.08%) 하락했다.

특히 금융주 주가가 많이 떨어졌다. 14~16일 사흘간 하나금융지주(-4.8%), KB금융(-4.5%), 신한지주(-4.4%), 우리금융지주(-4.0%) 등 대형 금융사들은 모두 4%대 하락을 기록했다. JB금융지주는 6% 가까이 떨어졌다.

◇‘빚투 잔액’도 18조원으로 늘어

이처럼 반대매매의 위험이 커지고 있지만, 증권사에서 돈을 빌리는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늘어나는 추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의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18조2634억원으로 집계됐다. 한달 전(17조1210억원)보다 6.7% 증가했다. 지난 1월 중순만 해도 15조원대였는데 계속 불어나면서 지난 13일 연중 최고치를 찍은 뒤 약간 줄어든 상태다. SVB 사태가 빚투족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반대매매는 통상 담보 부족 상태가 2거래일 이상 지속될 때 일어난다. 따라서 지난 14일 급증한 담보 부족 계좌에 대한 반대매매 물량이 16일 이후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증권사들은 이 수치를 별도로 공개하지 않는다. 반대매매를 많이 하는 증권사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꺼리기 때문이다.

다만, 금융투자협회를 통해 ‘미수거래 반대매매’ 금액은 공개된다. 지난 14일 기준 268억원으로 이달 초(224억원)보다 늘었다. 미수 거래는 지금 당장 돈이 없지만 사흘 뒤에 입금하는 조건으로 주식을 사는 일종의 ‘단기 외상’인데, 사흘 뒤에도 지불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반대매매가 일어난다. 금투협 관계자는 “미수거래 반대매매는 단기 수익을 노린 단타족들이 기대 수익을 내지 못했을 때 많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한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반대매매 물량이 많이 나오면 코스피가 추가적으로 더 떨어질 여지가 크다”며 “다만, 오는 22일(현지 시각)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 금리 동결 결정을 한다면 증시에 다시 훈풍이 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