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를 이끄는 주도 업종이 지난달 2차전지(배터리)에서 이달 들어 반도체로 바뀌고 있다. 배터리주(株)의 대표 주자였던 이른바 ‘에코프로 형제(에코프로비엠과 에코프로)’가 주춤한 반면, 국내 반도체 양대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연일 52주 신고가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시 투자자들은 한동안 박스권에 갇혔던 유가증권시장(코스피)이 대형 반도체주의 상승세에 올라타고 강세장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한국거래소가 집계하는 ‘KRX 반도체 TOP 15′ 지수는 이달 들어 약 9.5% 상승했다. 이 지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SK스퀘어 등 대표적인 반도체 관련 주 15개의 주가 흐름을 따르는, 일종의 ‘반도체 테마 지표’다. 반도체주의 상승률이 같은 기간 코스피 전체 상승률(2.3%)의 4배 이상을 기록한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 26일 1년 2개월 만에 7만원 선을 돌파하는 등 선전하고 있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에코프로비엠 등 2차전지 관련 주를 모아 놓은 ‘KRX 2차전지 K-뉴딜’ 지수는 이달 들어 3.1% 하락했다.

◇‘AI 열풍’이 반도체주 끌어올려

이는 지난달 추세와 정반대다. ‘KRX 2차전지 K-뉴딜’ 지수는 4월 코스닥 시장에 불었던 배터리주 열풍을 타고 6.4% 올랐지만, 같은 기간 ‘KRX 반도체 TOP 15′ 지수는 힘을 못 쓰며 3.5% 하락했었다. 이처럼 두 테마 지수의 등락률이 뒤바뀌면서, 증권가에선 “4월 배터리주에 불었던 봄바람이, 5월엔 반도체주에 불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다수 전문가들은 최근 국내 반도체주의 상승이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증가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한다. 복잡한 AI 연산을 위해선 메모리 반도체 중에서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필수적인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글로벌 HBM 시장의 점유율이 90% 이상이기 때문이다. HBM은 여러 개의 D램(메모리 반도체 일종)을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끌어올린 첨단 메모리 반도체다. 최근 미국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가 월가 예상치를 50%나 상회하는 2분기 매출 전망을 내놓은 것도, 국내 반도체주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반면, 2차전지주에 대해선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오를 만큼 올랐다”는 평가가 많다. 대표적인 배터리주인 에코프로비엠 주가는 이달 들어 11% 내렸지만, 올초 대비로는 여전히 158%나 오른 가격이다. 에코프로비엠의 모회사인 에코프로는 올초 대비 426%나 뛴 상태다. 여기에다 이달 들어 에코프로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 편입이 불발되고, 미공개 정보 이용 혐의로 기소된 이동채 에코프로 회장이 2심에서 법정 구속되는 등 각종 악재가 겹쳤다.

◇외국인 순매수 ‘투톱’도 반도체

이 같이 갈리는 전망은 외국인 자금의 흐름으로도 나타났다. 이달 들어 지난 26일까지 외국인 투자자가 코스피와 코스닥을 통틀어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 ‘투톱’은 삼성전자(1조9800억원)와 SK하이닉스(1조1300억원)였다. 반면 에코프로는 외국인이 같은 기간 가장 많이 순매도(4200억원)했다. 다른 2차전지주인 포스코퓨처엠(1600억원)과 에코프로비엠(1400억원)도 외국인의 ‘순매도 톱10′ 목록에 들어갔다.

증권가 애널리스트 상당수는 반도체주 강세가 당분간 계속된다고 예측한다. AI 수혜 외에도, 최근 이어진 메모리 반도체 감산 기조가 공급 물량을 줄여 반도체 가격이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상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반도체 기업의 수익성 개선으로 연결된다.

반면,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라는 의견도 있다. AI에 직결된 HBM 시장이 전체 메모리 시장에 비해선 여전히 작기 때문이다. 김양재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HBM 시장은 전체 메모리 수요의 5% 수준에 불과하다”며 “업황 개선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메모리 수요는 늘어나겠지만, 최근 가파른 상승세가 계속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