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5종목 무더기 하한가 사태와 관련, 출국 금지와 압수 수색 처분을 받은 온라인 주식 카페 B 투자연구소 운영자 강모(52)씨는 2014~2015년에도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작년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집행유예 3년), 벌금 4억원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 기간에 다시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말 SG증권발 8종목 하한가 사태로 구속된 라덕연씨는 2014년부터 금융 당국에 등록하지 않은 불법 투자 자문사를 여러 차례 설립했다가 폐업했지만 당국의 감시망에 걸리지 않았다. 그는 2019년부터 불법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해 주가조작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근 연달아 터진 무더기 하한가 사태의 공통점은 피의자들의 주가조작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주가조작 수법이 날로 교묘해졌는데도, 적발된 범죄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에 그쳐 재범을 양산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주가조작 범죄 23%가 재범… 이틀에 한 번꼴 발생
한국 증시에서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의 재범 비율이 2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원회가 강병원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2019~2022년) 증시 3대 불공정거래(미공개 정보 이용·주가조작·부정 거래)로 제재받은 643명 중 23%(149명)는 재범 이상 전력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4명 중 1명은 과거에 이미 한 번 이상 불공정거래로 적발된 적이 있다는 뜻이다.
4년간 643명이 제재를 받았다는 것은 이틀에 한 번꼴로 주가조작 같은 범죄가 일어났다는 뜻이다. 주식 불공정거래의 온상으로 지적받는 유사 투자자문업체는 지난달 2142곳으로 4년 전인 2019년(280건)의 8배 가까이로 불었다. 매년 500여 곳의 유사 투자자문업체가 새로 등장하는 셈이다.
2020년에는 불공정거래로 제재받은 175명 중 30%인 52명이 재범 이상이었다. 이는 강도(19.7%)·폭력(11.7%) 등 다른 범죄의 재범률보다 훨씬 높다.
‘청담동 주식 부자’로 불린 이희진씨는 불법 투자 매매로 피해자 200여 명을 양산하고 시세 차익 130억원을 거둔 혐의로 2016년부터 3년 6개월간 징역형을 살고 2020년 3월 출소했다. 그는 지난 3월 허위 정보를 퍼트려 가상 화폐 가격을 올리려 한 혐의로 검찰에 입건됐다.
◇'감옥 가도 남는 장사’
하지만 불공정거래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다. 형사처벌은 엄격한 입증 책임이 요구돼 기소율과 처벌 수준이 낮고, 부당이득 산정 기준이 불분명해 벌금도 세지 않기 때문이다.
2016~2021년 금융위원회가 3대 주식 불공정거래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통보한 854명 중 불기소율은 53.5%(457명)로 절반을 넘었다. 주가조작 혐의로 적발돼도 2명 중 1명은 재판도 받지 않은 것이다.
유죄가 입증돼도 집행유예로 그치는 경우가 많고, 실형이 선고되더라도 형량이 너무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0·2021년 대법원이 불공정거래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비율은 103건 중 50건으로 거의 절반(48.5%)에 육박했다.
2006·2007년 1600억원대 자금과 800여개 차명계좌를 동원해 자동차 부품 회사인 루보의 주가를 6개월 만에 40배 넘게 올려 1100억원 부당이득을 챙긴 제이유그룹 김모 부회장은 징역 6년형을 받았다. 미국이 금융 사기 범죄에 대해 10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하는 것에 비해 형량이 낮다. 벌금(70억원)과 추징금(30억원) 규모도 부당이득의 10%가 되지 않았다. 국내 증시에서 “주가조작 범죄는 감옥에 가도 남는 장사”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한번 주가를 조작하면 패가망신할 정도로 강한 처벌을 내려 주식시장에서 퇴출시켜야 주가조작이 근절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