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메이도프 전 미국 나스닥증권거래소 회장은 역사상 최악의 금융 사기범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70년대부터 2008년까지 30여 년 동안 3만여 명을 상대로 ‘폰지 사기’를 벌여 피해를 무려 650억달러(약 83조원) 입힌 혐의로 2009년 150년형을 선고받고 2021년 교도소에서 옥사했다. 폰지 사기란 고수익을 미끼로 새 투자금을 받아 기존 투자자의 수익금을 지급하는, 일종의 ‘돌려 막기’ 수법이다.
그런데 미 경제 전문지 마켓워치가 경제 사범의 형량 순위를 매겼더니, 메이도프는 역대 5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1위는 뉴욕의 사업가 출신 숄람 와이스로, 지난 2000년 보험 회사를 상대로 한 4억5000만달러(약 6000억원) 규모 사기 혐의로 무려 845년형을 선고받았다. 2위는 와이스의 공범인 키스 파운드로 740년형, 3위는 ‘고수익 보장’ 사기로 수천만달러를 챙긴 노먼 슈밋(330년형), 4위는 텔레뱅킹 사기범 로버트 톰슨(309년형)이었다.
미국에서 대규모 금융 사기를 벌였다가 당국에 검거되면 수백 년 징역형으로 남은 일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한다. 실제 위 사례 중 메이도프와 파운드, 슈밋은 옥사했고, 톰슨은 현재 복역 중이다. 와이스는 2021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감형해 석방했다. “미국은 자본시장이 자유로운 반면, 일단 법을 어기면 신세를 완전히 망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이유다.
미국에선 어떻게 이처럼 높은 형량이 가능할까. 미국은 범죄자가 여러 범죄를 저질렀을 때 법원의 형량 산정에 ‘병과(倂科)주의’가 적용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병과주의란 죄의 수만큼 징역형이 더해지는 형량 계산법이다. 예를 들어 징역형 10년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10번 저지른다면, 총 100년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가중(加重)주의’가 적용된다. 여러 차례 죄를 범할 경우 형량이 가장 높은 혐의에 대해 형량을 50% 가중하는 원칙이다. 똑같이 10년형짜리 범죄를 10~20번 저지르더라도 15년형이 최대인 것이다. 이 때문에 상습적 주가조작범에 대한 처벌이 미국에 비해 너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상 50억원 이상의 주가조작 범죄는 5~30년의 유기징역이나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다. 하지만 무기징역형은 아직 한 번도 선고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기징역은 가중주의에 따라 아무리 상습범이라도 45년(30년의 1.5배)형이 최대다. 게다가 실제 판결의 지침인 ‘대법원 양형 기준’에 따르면 300억원 이상의 주가조작도 15년형을 초과할 수 없다.
한국에선 천문학적 벌금도 기대하기 어렵다. 법률상으론 벌금 액수가 ‘부당이득의 3~5배’로 적진 않지만, 부당이득 산정이 어려울 경우 상한선이 5억원이기 때문이다. 한 법조 관계자는 “형사재판에선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기 때문에 주가조작 부당이득 금액이 미상(未詳)으로 결론 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에선 부당이득의 최대 4배를 벌금이 아니라 행정처분인 ‘과징금’으로 징수할 수 있어, 불법 이익 환수가 비교적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