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연체율이 빠르게 상승하며 코로나 때 쌓인 빚더미의 뇌관이 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중·저 신용자 대출의 부실이 늘어난 여파가 저축은행·캐피털 등 2금융권 연체율을 급등시킨 데 이어 은행권마저 안심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은행 신규 연체율 1년 만에 2배로 껑충
현재 은행권 연체율은 1% 미만으로 3~5%대에 달하는 저축은행·캐피털 등 2금융권에 비하면 훨씬 낮다. 하지만 속도가 문제다. 올 들어 제때 이자를 갚지 못하는 가계와 기업이 속출하면서 은행권 연체율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신규 연체율 평균은 0.09%로 지난해 5월(0.04%)의 2배를 넘어섰다. 가계(0.08%)보다는 기업(0.11%)의 신규 연체율이 조금 더 높았다. 5대 은행의 신규 연체율은 지난해 상반기 내내 0.04%를 유지하다가 지난해 8월 0.05%로 올라선 이후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신규 연체가 급증하면서 은행들의 전체 연체 규모도 불어나고 있다.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5대 은행의 원화 대출 연체율은 0.33%로 1년 전(0.2%)보다 0.13%포인트 상승했다. 2021년 말 연체율(0.16%)과 비교하면 1년 5개월 만에 2배 넘게 오른 것이다. 5대 은행 연체율이 지난 2019~2021년 0.29%, 0.21%, 0.16% 등으로 꾸준한 하락세를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연체율이 상승하자 은행들의 부실 자산 관리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5대 은행의 경우 부실채권을 뜻하는 고정이하여신(NPL) 비율이 지난달 평균 0.29%로 지난해 5월(0.25%)보다 0.04%포인트 상승했다. 돈을 빌린 가계·기업의 신용도 하락이나 채무불이행 등으로 돈을 떼일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된 금액을 가리키는 신용 리스크 익스포저는 지난 3월 말 기준 1601조3035억원(5대 은행 기준)에 달한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 말(1357조4762억원)과 비교해 3년여 사이 240조원 넘게 늘었다. 시중은행 리스크 담당 임원은 “그동안 연체 채권을 매각하고, 대손충당금을 꾸준히 쌓아왔기에 연체 리스크가 아직은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추이 변화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연체율, 계속 오를 것”
올해 들어 은행 연체율을 꿈틀대게 한 요인으로는 2021년 이후의 가파른 금리 인상이 꼽힌다. 한국은행은 팬데믹 이후 연 0.5% 수준으로 매우 낮게 유지되던 기준금리를 2021년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1년 5개월 만에 3%포인트 올리는(연 0.5%→3.5%) 초강수를 뒀다. 역대 가장 빠른 금리 인상을 통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 부채와 급등하는 집값을 잡고, 물가 상승 압력을 누르기 위한 조치였다. 지난해까지는 상환 유예 등의 정부 지원과 보복 소비 등에 힘입어 부채 리스크가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올해 유예된 대출 일부에 대한 상환이 시작되고,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4년여 만에 가장 높은 기준금리가 5개월간 이어지면서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가계와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여기에 수출 부진 장기화에 따른 경기 침체 조짐까지 나타나면서 은행권 연체율은 앞으로도 오름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많다. 이미 역대 최고 수준인 한미 기준금리 차가 향후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한은이 금리를 내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금융연구원 이지언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말 1조7000억원 수준이던 가계 부문 고정이하여신이 올해 말 3조원까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2012년 이후 급락하던 고정이하여신 비율이 갑자기 급등세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은행권은 가계 대출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규 연체율
금융회사에서 매월 신규로 발생한 연체 금액을 직전 월 마지막 날의 대출 잔액으로 나눈 비율. 실시간 연체 추이를 확인할 때 쓰이는 지표다.
☞고정이하여신 비율
은행 대출(여신)은 부실 위험성이 낮은 순서대로 ‘정상-요주의-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 등 5단계로 나뉜다. 이 중에서 연체 기간이 3개월을 넘는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대출은 돈 떼일 염려가 크다는 의미에서 ‘고정이하여신’으로 분리해 관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