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 한도의 마이너스통장을 쓰고 있는 직장인 오모(38)씨는 최근 2개월 사이 금리가 0.5%포인트쯤 올랐다. 지난 4월 중순 금리는 연 5.5%였는데 최근 연 6%대 초반으로 오른 것이다. 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 증가분은 아직 월 5만원 정도로 크지 않지만, 앞으로 금리가 더 오르지 않을까 걱정이다. 오씨는 “대출액 일부를 갚고, 이자로 나가는 비용을 줄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동안 하락세를 보이던 시중은행 대출 금리가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대출 재원 마련을 위해 은행이 시장에서 발행하는 채권 금리가 최근 상승세이기 때문이다. 올 들어서 기준금리 동결 기조에 한숨 돌렸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뜻)’ 대출자들의 시름이 다시 깊어질 수 있어 보인다.
◇은행 대출 금리, 일제히 방향 바꿔
시중은행 대출 금리 상승은 신용, 담보 등 대출 유형을 가리지 않고 이뤄지고 있다. 20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국내 4대 은행의 신용대출 변동금리(6개월)는 최고 금리를 기준으로 연 5.87~6.37%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4월 말 은행권 신용대출 최고 금리가 연 5.56~6.04%에 분포하던 것과 비교하면 0.4%포인트쯤 오른 것이다. 최고 금리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은행의 대출 성향이 어떻게 바뀌는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일제히 상승세다. 6개월마다 금리가 바뀌는 변동형의 경우, 4대 은행의 최고 금리 범위는 20일 기준 연 5.54~6.1%인데 지난 4월 말(연 5.49~5.82%)보다 0.2%포인트 정도 올랐다. 5년간 금리가 고정되는 혼합형의 최고 금리 구간도 같은 기간 연 4.62~5.52%에서 연 4.91~5.83%로 0.3%포인트쯤 상승했다. 4월만 해도 주택담보대출 혼합형의 경우, KB국민·우리은행 상품은 최저 금리가 연 3%대까지 떨어졌으나 이달 들어서는 모두 연 4%대를 웃돌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 연 3%대의 주택담보대출은 사실상 금융권에서 실종된 상태”라고 말했다.
◇은행채 금리 올라 대출 금리도 들썩
한두 달 전만 해도 은행권 대출 금리는 뚜렷한 하락세였다. 기준금리가 올 들어 동결 기조인 데다 은행권의 ‘이자 장사’에 대한 정부의 감시가 대폭 강화됐기 때문이다.
한풀 꺾였던 금리가 한순간에 상승 기조로 돌아선 것은 은행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시장에서 발행하는 채권 금리가 줄줄이 오르기 때문이다. 은행권 신용대출 금리 산정에 영향을 주는 은행채 6개월물(무보증·AAA) 금리는 지난 19일 연 3.811%를 기록하며 4월 중순의 연저점(연 3.471%)보다 0.34%포인트나 올랐다.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 5년물 금리도 같은 기간 0.4%포인트(연 3.8%→4.2%) 올랐고, 변동금리와 연동된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자금조달비용지수)도 4~5월 사이 0.12%포인트(3.44%→3.56%) 상승했다.
은행채 금리가 급등한 배경으로는 그간 시장 금리가 과도하게 하락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상화 수순이란 얘기다. 시장 금리는 물가 상승 둔화와 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한국은행이 연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올해 1~4월 크게 하락했다. 하지만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계속해서 연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일축하고, 한미 금리차 확대에 대한 우려도 더해지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상황이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지난달에만 17조원 넘는 통화안정증권을 시장에 풀면서 채권 가격 하락(금리 상승)을 유도하고, 최근 은행채 발행이 급증한 것도 채권 금리 상승을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2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채 발행액은 9조6200억원으로 전달보다 144.3%나 늘었다.
향후 전망은 엇갈린다. 시장 금리가 이미 꽤 올랐다는 시각이 있지만, 최근 역전세난 심화로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 수요가 늘고 있어 대출 재원용 은행채 발행이 늘어나면 금리 상승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그간 대출 금리가 너무 낮았던 것이고, 현재 정상화 과정이라 봐야 한다”며 “대출 금리는 당분간 등락을 거듭하다 추가로 조금 더 오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