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내 증시를 주도했던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대장주들이 이달 들어 다소 주춤한 가운데, 이 대형사들에 소재·부품·장비(소부장)를 납품하는 이른바 ‘반도체 소부장’주들이 급등하고 있다. 같은 반도체 업종 내에서 아우(소부장주)가 형님(대장주)을 따라잡고서는 질주하는 형세다. 증시 전문가들은 “반도체 열풍이 대형주에서 중소형주로 옮아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도 “반도체 감산(減産) 국면에서 소부장 종목의 실적이 악화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반도체 장비 업체인 프로텍 주가는 이달 들어 지난 20일까지 56%나 상승했다. 이 회사는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레이저 장비를 제작한다. 반도체용 화학 소재를 생산하는 레이크머티리얼즈, 반도체용 특수가스를 만드는 티이엠씨의 주가도 각각 55%, 25% 올랐다. 이 기간 코스피는 1% 올랐는데, 시장 대비 수십 배에 달하는 수익률을 올린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0%), SK하이닉스(7%) 등 반도체 대장주의 상승률을 큰 폭으로 앞섰다.

그래픽=김성규
그래픽=김성규

◇대장주 제자린데 장비주는 급등

개별 종목들의 묶음인 상장지수펀드(ETF)에서도 반도체 소부장주가 돋보인다. 반도체 업종에 투자하는 국내 ETF 17종 가운데 소부장주에만 집중하는 신한자산운용의 ‘SOL 반도체 소부장 Fn’의 한 달 수익률(11.4%·20일 기준)은 2등이었다. 그런데 1위인 ‘TIGER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 레버리지’(18.6%)는 주가의 2배로 수익을 돌려주는 ‘2배수 상품’이다. ‘1배수 상품’으로는 소부장 ETF가 사실상 선두를 차지한 것이다.

지난달에는 반도체 대장주가 증시를 주도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지난달 각각 9%, 21% 올라 ‘7만전자’와 ‘11만닉스’를 달성했다. 이는 같은 기간 레이크머티리얼즈(9%)·프로텍(15%) 등 소부장주의 주가 상승률보다 비슷하거나 높은 것으로, 시가총액 격차를 감안하면 대형주에 매수세가 압도적으로 쏠렸다는 것을 뜻한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약 420조원)은 레이크머티리얼즈(1조5000억원)의 280배에 달한다. 이 대형주들의 상승은 외국인들의 매수세가 이끌었다.

그런데 파죽지세로 치솟던 반도체 대형주들은 이달 들어 ‘과열 우려’가 제기되며 한풀 꺾였다. 외국인들의 일평균 삼성전자 순매수액은 지난달 약 1284억원에서 이달 들어 약 446억원으로 3분의 1토막 났다. 또 상당수 투자자들은 수익 실현을 위해 매도 버튼을 눌렀다. 이렇게 대형주가 주춤하자 ‘반도체 테마’를 노린 투자금들이 중소형 소부장주로 대신 유입됐다는 것이 증권가의 대체적 분석이다. 이 종목들은 시가총액이 적어 비교적 작은 매수세에도 주가가 크게 뛴다.

◇전문가들 “감산은 소부장에 악재”

그런데 일부 전문가들은 “반도체 소부장주는 반도체 감산으로 악재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근 삼성전자를 비롯해 글로벌 반도체 대기업들은 대부분 감산에 나선 상황이다. 그런데 감산은 반도체 가격을 올려 삼성전자 같은 반도체 제조·판매사의 이익을 늘릴 순 있겠지만, 목표 생산량이 줄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를 생산하는 소부장 기업엔 반대로 타격을 준다는 것이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반도체 업황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소부장주에 투자했다가 단기적으로 실적 악화를 맞닥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반도체 업황이 이르면 올해 안으로 바닥을 찍고 반등할 전망이 많아 소부장주에 대한 투자 비중을 미리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건재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반도체 가격 하락세가 일단락되고 정상화된다는 가정이 기업들의 향후 예상 실적에 반영되기 시작하고 있다”며 “소부장 섹터 비중 확대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했다. 한 증시 관계자는 “소부장 업체가 특정 대기업과 납품 계약을 맺는 데 성공하는지 등 구체적인 실적 소식에 따라 투자해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