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역대급 ‘엔저(엔화 가치 약세)’ 현상을 타고 33년 만의 최대 활황을 기록 중인 일본 증시에 한국의 일학개미(일본 주식을 사는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6월 일학개미의 일본 주식 보유고(잔액)는 사상 최대를 찍었고, 월별 순매수 물량도 ‘코로나 특수’ 이후 가장 많다.
이에 일본 주식 투자에 관심을 갖는 개인 투자자들이 늘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너무 많이 올라 ‘이미 고점 아닐까’라는 우려도 나온다. 증시 전문가들은 “과열 현상이 보이긴 하지만 반도체 등 일부 종목은 장기 투자 관점에서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25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의 일본 주식 보유액은 22일 기준 약 4조1600억원을 기록했다. 2011년 집계 이후 최대치다. 지난 2021년 9월의 약 4조원이 종전 최대 기록이었는데, 약 1년9개월 만에 경신했다.
이달 들어 일학개미의 일본 주식 순매수(매도보다 매수가 많은 것) 금액도 약 950억원으로 월별 기준 지난 2021년 3월 이후 2년 3개월 만에 가장 많다. 그만큼 일본 주식을 많이 사고, 또 쟁여두는 것이다.
◇엔저, 日호경기에 끌리는 개미들
국내 개미들이 일본으로 향하는 이유는, 최근 일본 증시가 1980~1990년대 버블 경제 이후 최대 호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일본 닛케이지수는 지난 16일 3만3706.08을 기록해 지난 1990년 3월 9일(3만3993.12) 이후 33년 3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23일엔 3만2781.54로 마감하며 다소 하락했지만, 여전히 역대급으로 높은 수준이다.
배경에는 엔저 현상이 있다. 엔화 가치가 낮으면, 같은 달러로 더 많은 일본 주식을 매수할 수 있어 외국인 투자자가 몰린다. 현재 달러당 엔화 환율은 143엔까지 치솟아(달러 강세, 엔화 약세), 24년 만의 기록적 엔저였던 작년 10월(140엔대 후반)에 근접했다.
호조를 보이는 일본 경기도 투자 심리를 자극했다. 지난 8일 일본 정부는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보다 0.7% 성장했다고 밝혔다. 이를 연간으로 환산하면 2.7%로,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1.4%)의 두 배에 가깝다.
◇”버핏 회장님 따라…” 종합상사주 인기
일학개미들은 어떤 종목을 사고 있을까. 지난 한 달(5월 24일~6월 23일) 동안 국내 투자자가 일본 증시에서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아이셰어즈 미국채 20년물’ ETF(상장지수펀드)로, 약 400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일본 증시에 상장된 미국 국채 ETF를 샀다는 뜻인데, 이는 향후 미국 금리 하락에 따른 채권 가격 상승과 엔화 가치가 오를 때 환차익을 동시에 얻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2위는 일본 반도체 기업들을 모아놓은 ‘글로벌 X 일본 반도체’ ETF(367억원)였다. 최근 반도체 업종이 AI(인공지능) 열풍으로 수혜를 보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른바 ‘버핏 효과’를 본 일본 종합상사들도 인기 종목이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지난 4월 “일본 종합상사들에 대한 투자가 미국 이외 기업 중 가장 많다. 지분 보유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러브콜을 날렸다. 최근 버크셔해서웨이의 자회사는 미쓰비시 등 일본 종합상사 5곳의 지분을 평균 8.5% 이상으로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일학개미들도 버핏 회장을 따라 최근 한 달 미쓰비시(62억원), 마루베니(43억원), 스미토모(28억원)등 종합상사 주를 대거 사들였다.
◇엔저 끝나면 日증시 하락 가능
일본 증시가 이미 고점을 찍은 건 아닐까. 다수 전문가들은 엔저 현상이 완화되면 일본 주가지수도 하락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민병규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미국 시장금리가 고점을 찍고 내려오면 현재 ‘제로금리’ 수준의 일본과의 격차가 줄어들며 (달러 대신) 엔화 가치가 상승해 증시자금이 이탈할 수 있다”며 “일본에 과도하게 투자하는 것은 손실을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개별 종목 중 반도체 등 유망 업종은 여전히 주가 전망이 양호하다는 의견도 있다. 최보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 하락은 가능하지만, AI 특수를 탄 반도체와 매출 전망이 좋은 기계 업종 등은 4분기 이후에 다시 반등할 수 있는 저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 임원은 “거품이 빠질 때 실적이 뒷받침 되는 종목이 선방하며 돋보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