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이 불러온 전 세계 공급망 재편의 여파로 최근 신흥국 펀드가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미국과의 무역 갈등으로 투자 위험이 커진 중국에서 투자 자금이 이탈해 ‘넥스트 차이나(next China·다음 번 중국)’로 거론되는 멕시코, 베트남 등 신흥국으로 향하는 것이다.
25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에서 유일하게 멕시코에 집중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인 ‘ACE멕시코MSCI ETF’의 연초 대비 수익률은 약 25%에 달했다. 이는 신흥국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펀드(ETF 포함) 총 700여 종 가운데 전체 4등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파생 금융상품인 레버리지(목표 지수의 2배로 수익을 내는 것) ETF를 제외하면 순위는 1등으로 올라간다.
◇멕시코 펀드, 올 들어 25% 수익
중국을 제외한 다른 신흥국 펀드의 수익 성적표도 비교적 좋다. 국가별 펀드의 연초 대비 평균 수익률은 브라질(17%), 베트남(16%), 인도(12%) 등으로 나타났다. 중국(-8%)만이 신흥국 펀드 중 유일하게 마이너스 수익을 냈다. 올 초 기대를 모았던 중국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효과가 기대에 못 미쳐 투자자들이 실망한 결과로 해석된다.
신흥국 펀드가 잘나가는 것은 미·중 갈등의 반사적 효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미국이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하는 등 미·중 무역 갈등의 골이 깊어지자, 중국에 진출했던 글로벌 기업들이 하나둘 철수하는 중이다. 그런데 높은 인건비 때문에 미국·유럽 등 본국으로는 돌아가지 못하고, 제반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신흥국을 찾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달러가 약세 흐름을 보이자, ‘앞으로 신흥국의 화폐 가치가 더 올라간다’고 예측하는 투자자들의 돈이 이들 국가로 몰린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멕시코는 미국이 작년부터 시행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직접적 수혜국이다. IRA는 ‘북미 지역’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적용하는데, 멕시코가 이 북미 지역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각종 전기차 기업들이 세액 지원을 노리고 멕시코로 몰려들고 있다. 이런 영향 등으로 멕시코는 올 1~5월 기준 미국에 1950억달러(약250조원)어치를 수출하며 중국(1690억달러)을 제치고 ‘미국의 최대 수입국’으로 등극했다.
◇중국과 밀착하며 뜨는 브라질
반면 브라질은 미국과 대척점에 있는 중국의 덕을 보고 있다. 세계 1위 곡물 수입국인 중국이 미국 의존도를 줄이면서 브라질산 수입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세관총국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중국의 옥수수 수입량 752만t 가운데 브라질산은 216만t로 29%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미국(38%)이 아직 1위지만, 작년(72%) 대비로는 급감한 상황이다. 이를 브라질산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브라질의 대중국 교역액은 작년 1505억달러를 기록,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홍성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브라질은 미·중 간 관세 전쟁 덕택에 가장 이득을 본 국가 중 하나”라고 했다.
베트남과 인도는 대규모 소비 시장인 중국과 가까우면서 인건비가 저렴해 투자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을 대체하는 미국 기업들의 생산 기지 역할도 기대된다. 애플은 작년 아이패드 공장을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이전했고, 올해는 맥북도 베트남에서 일부 생산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애플의 최대 협력사인 폭스콘은 인도 남부에 아이폰 부품 공장을 짓고 있다.
신흥국 펀드는 계속 순항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신흥국이라는 단일 분류로 묶기보다는 국가별 경제 상황을 살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찬영 한국투자신탁운용 본부장은 “미국의 금리 인하 전망이 불투명해지면 다시 강달러 현상이 나오며 신흥국 증시가 위축될 수 있다”며 “산업 기반이 비교적 튼튼한 베트남 등에 투자하는 펀드가 위기 상황에도 선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