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현국

올 상반기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직원 1인당 평균 보수가 사상 처음으로 6000만원을 넘었다. 상반기 희망퇴직자들은 특별퇴직금 등을 포함해 평균 8억~9억원에 달하는 목돈을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자 장사’로 손쉽게 돈을 번다는 비판을 받아온 시중은행들이 올해 상반기에도 역대급 실적을 등에 업고 성과급·퇴직금 잔치를 벌인 것이다.

◇고금리 장사 4대 은행 상반기 급여 6000만원 넘어

17일 시중은행들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4대 은행의 올 상반기 직원 1인당 평균 급여액은 6150만원이다. 지난해 상반기(5875만원)보다 4.7% 늘어난 것으로 4대 은행의 반기 평균 급여액이 6000만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코로나 사태가 터졌던 2020년 상반기(5050만원)와 비교해 불과 3년 만에 22%(1100만원)나 증가했다.

그래픽=김현국

은행들 중에는 경영 성과급을 상반기에 지급하는 곳이 더 많기 때문에 연봉 총액이 상반기 급여액의 2배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영 성과급이 보통 월급의 1.5배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4대 은행의 올해 평균 연봉은 1억1000만원 정도는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4대 은행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2021년 처음으로 1억원을 돌파해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은행원 급여가 크게 늘어난 것은 은행 실적에 연동된 성과급이 두둑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에 힘입어 은행들은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을 크게 남기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바 있다. 지난해 5대 은행의 당기순이익은 12조6908억원으로 2020년(8조6745억원) 대비 46%나 늘었다. 같은 기간 수수료 등의 비이자수익은 1조원가량 줄어든(4조6578억→3조5626억원) 반면 이자이익이 10조원가량 급증(27조209억→36조9388억원)하며 은행 곳간을 불렸다.

그래픽=김현국

◇11억원 넘는 퇴직금에 30대 희망퇴직도 등장

땅 짚고 헤엄치기 식 이자 장사로 돈을 쓸어 담은 은행들은 성과급으로도 모자라 퇴직금 잔치까지 벌이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 걸쳐 2개월여 사이 5대 은행에서만 2220여 명의 희망퇴직자가 평균 5억~6억원가량의 퇴직금을 받아 은행을 떠났다. 지난해 1~11월 희망퇴직 규모(1800여명)를 벌써 크게 넘어섰다. 은행들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익을 올리며 순항하고 있음에도 직원들의 희망퇴직 행렬은 줄을 잇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실적이 좋을수록 특별퇴직금을 후하게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 기회에 나가려는 직원이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4대 은행의 올해 반기보고서에서 은행장·부행장을 제치고 연봉 상위 5명에 이름을 올린 직원들은 전원(20명)이 희망퇴직자였다. 이들은 법정퇴직금과 특별퇴직금, 일반 급여 등을 합해 평균 8억~9억원가량을 받았는데 하나은행에는 무려 11억3000만원을 받은 직원도 있었다. 은행들은 나이, 직급을 비롯해 정년까지의 남은 개월 수 등을 감안해 특별퇴직금을 차등 지급하는데 지난해 5대 은행의 1인당 평균 퇴직금은 5억4000만원(법정퇴직금 포함)에 달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한창 일할 30대 직원들까지 희망퇴직을 요구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 신한은행 노사는 연초에 이어 올해 두 번째 희망퇴직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는데 대상이 ‘근속연수 15년 이상, 1983년생 이전 출생자’이다. 1983년생은 올해 만 나이로 39세(생일 이전), 40세(생일 이후)인데 30대가 은행권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된 것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일이다.

◇“국가적 특혜 받는 은행들, 뱃속 채우는 데만 급급”

은행들이 성과급과 퇴직금으로 뱃속을 채우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이자 비난 여론은 점점 들끓고 있다. 신규 사업자 진입이 철저히 제한된 시장에서 국가적 특혜를 받으며 돈을 버는 은행들이 사회적 책임을 망각하고 돈에 집착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외환위기·금융위기와 같은 대규모 위기가 터지면 국가에 손을 벌리는 은행들이 시장 여건이 좋을 때 번 돈은 철저히 사유화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의 한 스타트업에 다니는 김모(31)씨는 “혁신적 서비스를 개발하거나 매출 확대에 혁혁한 공을 세워 막대한 성과급을 받은 샐러리맨은 대단하고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호봉제라는 온실 속에 근무하며 저성과자가 득실대는 은행원이 퇴직금으로 10억원 넘는 돈을 챙긴다는 소식에는 허탈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도 은행에 성과급과 퇴직금 잔치를 자제하라는 목소리를 계속해서 내고 있지만, 이를 제어할 마땅한 대안은 없다. 퇴직금·성과급은 노사 합의로 정해지는 사안이기 때문에 당국이 개입할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는 “퇴직금·성과급 관련 공시를 강화하는 것 말고는 뚜렷한 대책이 없지만 국민들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도록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