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15일 적발한 글로벌 투자은행(IB) BNP파리바와 HSBC의 560억원 규모 불법 공매도는 은밀한 거래 행태와 솜방망이 처벌이 빚어낸 결과였다. 공매도는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보고, 갖고 있지 않은 주식을 빌려서 팔았다가 주가가 떨어지면 싸게 사서 갚아 이익을 내는 투자 기법이다.
해당 은행들은 2021년부터 작년까지 9개월간 실물 주식을 빌리지 않는 무차입 공매도를 해왔다. 현행법상 공매도를 할 경우 주식을 반드시 ‘사전 차입’해야 한다. 공매도 시점에 빌린 주식이 없는 무차입 상태였다가 나중에 빌리는 ‘사후 차입’은 명백한 불법이다. 팔 수 있는 주식이 없는데도 허위로 매도 주문을 내서 자본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실제 공매도가 몰리면 주가가 급락하는 경우가 있었고,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외국인이 불법 공매도로 증시를 어지럽힌다”는 비판이 일었다. 어떻게 이 투자은행들은 오랜 기간 불법 공매도를 했는데도 적발되지 않았을까.
◇공매도 전산 시스템 구축 어려워
국내 증시에서 공매도의 98% 이상은 외국인과 기관에 의해 이뤄진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초 후 공매도 비율은 외국인(71.4%)·기관(27%) 순이었고, 개인은 1.6%에 그쳤다.
그런데 외국인·기관은 전화나 이메일 등을 통해 주식을 빌려주고 빌린다. 그리고 거래를 대리하는 증권사 직원이 공매도 주문 시스템에 일일이 쳐넣어 거래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빌린 주식의 규모 등 명확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는다. 불법 무차입 공매도가 장기간 자행될 환경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부는 시스템 구축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공매도가 진행되는데 한 민간 시스템만 표준으로 정해서 정부가 강제할 수 없고, 한국의 상황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불법 공매도 방지를 위한 전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실시간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외국인·기관이 주식을 빌리고 빌려주는) 대차거래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데 거래 목적이 여러 가지고 전화나 이메일 등 이용하는 플랫폼이 다 달라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면서 “파악하더라도 기술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솜방망이 처벌도 불법 공매도를 키운 것으로 지적된다. 금감원이 국회에 낸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 8월까지 불법 공매도 174건에 대해 행정벌인 과징금·과태료만 부과됐고 형사처벌은 한 건도 없었다. 불법 공매도를 저지른 것은 대부분 외국 기관이었다. 전체 174건 가운데 외국 기관은 156곳, 국내 기관은 18곳이었다.
◇전문가들 “강력 사후 처벌이 대안”
전문가들은 강력 처벌을 대안으로 내세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불법 공매도를 적발해 강력히 처벌하는 게 현재로선 유일한 대안”이라며 “해외에서도 이런 식으로 불법 공매도를 막는다”고 말했다.
미국은 악의적으로 남용하는 무차입 공매도에 대해 500만달러(약 68억원) 이하 벌금 또는 20년 이하 징역을 적용한다. 벌금은 부당 이득의 10배로 매긴다. 프랑스는 무차입 공매도에 대해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을 내린다. 1억유로(약 1427억원)나 이득의 10배(법인 기준)까지 벌금을 부과한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공매도 규정 위반 시 각각 50만유로(약 7억1400만원), 200만유로(약 28억6000만원)씩 벌금을 책정한다. 영국은 아예 벌금 상한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한국의 처벌 수위도 점차 강화 추세다. 2021년 4월 개정 시행된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무차입 공매도를 하다 걸리면 1년 이상 징역 또는 부당 이득의 5배까지 벌금이 부과된다. 기존에는 1억원 이하의 과태료만 부과됐다.
실제, 금융위는 지난 3월 무차입 공매도를 한 ESK자산운용에 38억7000만원, UBS에 21억8000만원 등 외국계 금융사들에 6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들의 불법은 착오 때문이었지만, BNP파리바·HSBC의 경우 고의인 것으로 나타나 역대 최대 과징금이 내려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