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 부진으로 개인 투자자들의 원성이 커지면서 공매도가 정치권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 팔고 나중에 주식을 다시 사서 주식을 빌려준 곳에 갚는 투자 방식이다. 주가가 내려가야 돈을 버는데, 외국인(74%)과 기관(24%)이 대부분이다.
개인 투자자들은 올해 주가 하락이 공매도 때문이라고 지목하며 금융 당국에 대책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지난달 금융감독원이 BNP파리바·HSBC의 560억원대 불법 무차입 공매도를 적발하자, 분노한 개인 투자자들은 5만명 이상 동의를 얻어 국회에 ‘공매도 제도 개선 청원’을 냈다. 여당의 공매도 중단 카드엔 ‘메가 서울’로 총선 전 정책 이슈를 선점한 데 이어 투심을 잡아 정국 주도권을 확실히 쥐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공매도 중단, 곧 시행될 듯
여당은 일단 총선이 치러지는 내년 4월 전후까지 공매도가 중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매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공매도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이 구축돼야 하는데 이를 완비하려면 최소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공매도 주문은 전화나 이메일로 이뤄지고, 거래를 대리하는 증권사도 공매도 주문 시스템에 손으로 일일이 쳐 넣어 거래를 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공매도가 진행되고 수작업도 많아서 민간 시스템 하나를 표준으로 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금융 당국의 설명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난다는 점도 문제다.
하지만 공매도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하고, 여당까지 발 벗고 나선 상황에서 금융 당국이 뒷짐만 지고 있을 수 없게 됐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어떻게든 구축하거나 공매도를 중지하는 방안 외에는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매도 중단이 여러 차례 있었다는 점도 공매도 중단을 시행하는 데 있어서 부담을 줄여주는 요소다. 공매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 위기에 이어 2020년 코로나 사태 등 과거 세 차례에 걸쳐 전면 금지된 바 있다. 2021년 5월부터는 일부 대형 종목에 한해서만 공매도가 재개됐다.
◇개미군단 환호.. “공매도 필요” 지적도
최근 2차전지주 폭락 등 주가 부진에 머리를 싸맸던 개인 투자자들은 공매도 금지에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이날 투자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공매도 금지되면 주가 회복은 시간문제”, “이제야 공정한 투자를 할 수 있게 됐다” 등의 환영 글이 빗발쳤다.
하지만 공매도 금지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면 테마주 등에 가격 거품이 끼더라도 조정이 이뤄지기 어렵고, 제때 내려야 할 주가가 떨어지지 않으면 공매도가 재개됐을 때 오히려 급격한 주가 하락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계에 따르면 공매도가 증시를 하락시킨다는 주장은 검증된 적도 없다. 코로나 사태에 따른 주가 폭락으로 공매도가 금지됐을 때(2020년 3월~2021년 5월) 코스피는 77.7% 상승했지만 이는 저금리와 재정 투입으로 시중에 막대한 자금이 풀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금융위기로 공매도가 금지됐던 시기(2008년 10월~2009년 5월)에는 오히려 코스피가 3.6% 하락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 편입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코스피200과 코스닥150에 대해서만 공매도를 허용하고 있는 것에 대해 MSCI는 선진국지수 편입 요건으로 공매도 전면 재개를 요구해 왔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공매도를 금지하기보다는 강력한 처벌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금감원이 국회에 낸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 8월까지 불법 공매도 174건에 대해 행정벌인 과징금·과태료만 부과됐고 형사처벌은 한 건도 없었다. 반면 미국은 악의적으로 남용하는 무차입 공매도에 대해 500만달러(약 66억원) 이하 벌금 또는 20년 이하 징역을 적용한다. 벌금은 부당 이득의 10배로 매긴다. 영국은 아예 벌금 상한 규정이 없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공매도는 주가조작 세력이 특정 종목을 인위적으로 올리는 것을 어렵게 해 시장을 건전하게 하는 순기능도 있다”며 “모든 공매도를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