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개인 투자자들의 숙원이었던 공매도 전면 금지는 경기도 김포의 서울 편입이라는 ‘메가시티 서울’에 이어 굵직한 정책으로 이슈를 선점하려는 여당의 ‘정책 드라이브’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당초 금융 당국은 공매도 금지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었다.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공매도 한시적 금지’를 제안했고, 권성동·윤상현 의원 등도 ‘불법 공매도 처벌 강화’ 등을 강도 높게 요구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한국 증시가 외국인과 기관의 공매도 놀이터가 됐다”는 1400만 개인 투자자의 불만을 달래자는 취지다. 개인들은 지난 8월부터 한국 증시가 다른 나라보다 큰 폭으로 떨어지자 공매도를 원흉으로 지목하고 전면 금지를 요구해 왔다. 유의동 정책위의장은 이날 “정부에서 저희의 (공매도 전면 금지) 요구를 좀 무겁게 받아들여 줄 것을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불법 공매도 근절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주가조작에 준하는 불법 공매도 형사처벌, 과도한 주가 하락 시 자동으로 공매도가 금지되는 서킷 브레이커 적용 등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불공정한 방식으로 시장을 교란해 선량한 개인 투자자들을 약탈,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불법 공매도 세력을 자산시장의 심각한 병폐로 인식하고 있다”며 “(불법 공매도 관련) 공약 이행에 있어 한 치의 부족함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공매도가 금지되면 당장은 매도 물량이 줄기 때문에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공매도 금지가 주가를 끌어올리는 효과는 분명치 않다고 증시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총선 앞두고 개미와 정치권 요구 수용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등 개인 투자자 단체들은 “공매도가 외국인과 기관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주장하며 공매도 금지를 정부와 정치권에 요구해 왔다. 최근 한 달간 공매도의 74%를 외국인이, 24%를 기관이 맡았을 정도로 외국인과 기관 비율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개인 비율은 2%에 그쳤다.
올 들어서도 지난 8월 1일 2667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던 코스피가 지난 3일 2368로 3개월 만에 10% 넘게 급락하며 연초 수준으로 돌아가자 “공매도 때문”이라는 불만이 더 커졌다.
지난달 글로벌 투자은행(IB) BNP파리바와 HSBC의 560억원 규모 불법 공매도가 금융감독원에 적발되자 공매도 금지 요구가 한층 거세졌다. 개인 투자자들은 5만명 이상 동의를 얻어 국회에 ‘공매도 제도 개선 청원’을 냈다.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공매도 금지 여론이 확산된 것이다.
◇공매도 금지한 국가는 튀르키예와 한국뿐
전문가들은 “공매도를 금지하면 주식 매도량이 일시 감소해 주가가 단기적으로 오를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중·장기적인 주가 부양 효과는 미지수라는 의견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투자은행 임원은 “중·장기적으로 공매도 금지가 주가 상승에 미칠 영향은 거의 없다”며 “기업 이익 증가 여부 등 실적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과거 사례에서도 공매도 금지 효과는 불분명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 코스피는 4% 가까이 떨어졌고, 2011년 유럽 재정 위기 때에는 6% 정도 올랐다. 지난 2020~2021년 코로나 때는 78%나 주가가 급등하긴 했지만 “세계적으로 풀린 자금(유동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더 많다. 이 기간 미국 나스닥(61%), 일본 닛케이(37%) 등 다른 나라 주가도 크게 올랐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과거 한국의 세 차례 공매도 금지 때 외국인 투자액은 줄거나 오히려 유출이 더 컸다”고 밝혔다. “금융 위기도 아닌데 총선 표를 의식한 정치권 압박에 금융위가 무릎을 꿇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글로벌 투자의 기준이 되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덱스(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은 멀어지게 됐다. 공매도를 시행하지 않는 국가는 선진국 지수에 들어갈 수 없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세계에서 공매도를 전면 금지한 국가는 튀르키예와 한국뿐이다. 대만은 작년 10월 공매도를 금지했다가 지난 2월 풀었다.
일각에서는 주가의 거품을 빼는 공매도의 순기능이 사라질 경우 주가조작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지난 4~5월 SG증권발 무더기 하한가 사태 당시 8종목 중 6개가 공매도가 금지된 종목이었다. 현재 주가조작 의혹으로 수사받고 있는 영풍제지도 공매도가 불가능한 종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