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고금리 대출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187만명에게 최근 1년간 낸 이자의 일부를 돌려주기로 했다. 이자로 낸 금액 중에서 금리 ‘연 4%’를 넘는 부분의 90%를 돌려준다. 대출금은 2억원까지만 인정되며, 환급 한도는 300만원이다.

조용병 은행연합회장과 20개 은행장들은 21일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은행권 민생 금융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지원 규모는 올해 은행권 예상 당기순이익(약 20조원)의 10%인 2조원으로, 금융권의 단일 상생 금융(사회 공헌) 규모로는 역대 최고다. 지원액의 80%인 1조6000억원은 개인 사업자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이자 일부(1인당 평균 85만원)를 돌려주는 데 쓰고, 나머지 4000억원은 소상공인들의 전기료 및 임차료 지원, 취약 계층 지원 등에 쓸 예정이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2조원과 별도로 정책금융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은행연합회는 “은행의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최대한의 범위에서 코로나 종료 이후 높아진 금리 부담의 일정 수준을 직접적으로 낮춰주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상생안에 대해 “은행권이 최대로 지원했다고 생각한다”며 “은행권과 소통하며 정부도 필요한 부분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대규모 상생 금융으로 은행들의 배당 여력이 떨어지는 등 주주 환원 정책이 약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고객을 어렵게 하고 고객을 자꾸 이탈시키는 방식으로 (은행이) 돈을 버는 것은 중·장기 주주 이익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할 수 있는 최대치 내지는 가장 효율적 방법으로 이번 프로그램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의균

은행권 민생 금융 지원 방안의 핵심은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상 ‘이자 캐시백(환급)’이다. 받은 이자를 전부 돌려줄 수 없기 때문에 은행들은 꼼꼼하게 환급 기준을 세웠다. 대출금은 아무리 많아도 2억원까지만 적용된다. 또 전체 금리에서 ‘연 4%’를 넘는 부분에 대해서만 이자를 돌려받을 수 있다. 금리 ‘연 4%’ 초과 이자 납입액의 전체를 받는 것이 아니라 90%를 받는다. 돌려받는 금액은 300만원을 넘지 않도록 했다. 부동산 임대업자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다.

예컨대 지난해 연 5%의 금리로 은행에서 3억원의 개인 사업자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는 3억원 중 2억원에 대해서만 1%(5%-4%)포인트에 해당하는 이자 납입액의 90%인 180만원(2억원X 1% X 90%)을 돌려받는다. 은행에서 돈을 빌린 지 아직 1년이 안 된 대출자는 나중에 1년이 되는 시점에 같은 방식으로 이자 환급액을 받는다. 은행연합회 이태훈 전무는 “올해 실행된 개인 사업자 대출액의 75%, 대출자의 60% 이상이 금리 5%대 구간에 집중돼 있다”고 말했다.

◇은행마다 캐시백 기준 다를 수 있어

캐시백 조건은 은행별로 다를 수 있다. 은행별로 재무 건전성과 자금 동원 여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출받은 은행이 어디인지에 따라서 캐시백 한도가 줄고, 돌려받는 이자 비율도 낮아질 수 있다. 은행연합회는 “공통의 캐시백 기준에 미달하는 은행들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다음 달 은행별로 이자 캐시백 집행 계획을 제출받으면 윤곽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자를 돌려받는 시기는 내년 2월부터다. 2월부터 순차적으로 캐시백이 이뤄지며, 3월까지 전체 환급액의 50% 정도가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일 기준으로 개인 사업자 대출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1년 치 이자의 일부를 돌려주기 때문에 캐시백 절차는 내년 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은행이 알아서 캐시백 대상자를 선정해 통보하고, 돈을 돌려주기 때문에 돈 빌린 사람이 따로 캐시백을 신청하거나 조회할 필요가 없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이자 캐시백 시행을 악용해 보이스피싱이나 스미싱을 시도하는 세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원 규모, 은행권 당기순이익의 10%

지원 규모가 2조원으로 정해진 것에 대해 은행연합회는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은행권에 대한 국민적 기대에 최대한 부합할 수 있는 수준을 은행 전체 당기순이익의 10% 정도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국내은행 당기순이익은 19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자 캐시백에 참여하지 않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제외하면 15조원 정도다. 두 은행을 제외한 은행 18곳의 올해 예상 당기순이익(약 20조원)의 10%인 2조원을 상생안에 배정했다는 것이 은행권의 설명이다. 은행권 전체 당기순이익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분담금은 평균 2000억~3000억원대일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상생 방안이 나온 것은 은행들이 고금리에 편승해 역대급 이자 이익을 올리고 성과급·퇴직금 잔치를 벌이는 것에 거센 비난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 수장들이 앞장서 은행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줄 것을 압박한 데 이어 정치권에서는 기업의 초과 이윤에 높은 세율로 세금을 물리는 ‘횡재세’를 은행에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도 “소상공인들이 은행의 종 노릇을 한다”거나 “은행이 자기 잇속만 챙긴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에 은행들은 지난달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상생 재원 마련과 지원 방식을 논의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