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 관련 대응방안 언론 브리핑에 참석한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대응 방안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장련성 기자

시공 능력 16위 태영건설이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자금난에 몰린 끝에 28일 워크아웃(기업 구조 개선 작업)을 신청했지만, 금융시장은 평온했다. 오히려 불확실성으로 인한 불안이 해소되는 모습이어서 작년 9~10월 금융시장을 뒤흔든 레고랜드 사태와는 대조적이었다.

금융 시장으로 위기가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는 투자 심리가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날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태영건설 워크아웃이 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했다.

이날 코스피는 1.6%나 오른 2655.28에, 코스닥은 0.79% 오른 866.57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피 시장에서 개인이 1조3600억원어치 파는 동안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6200억원, 8200억원어치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달러당 6.2원 내린(원화 강세) 1288원을 기록했다. 채권 금리는 떨어졌다.(채권값 상승)

그래픽=정인성

◇시장, 레고랜드 사태 때와 대조적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레고랜드 시행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를 법원에 회생 신청하겠다고 선언한 작년 9월 28일 금융시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지방 정부가 자신이 보증한 빚 2050억원을 갚지 못한다고 사실상 공표한 셈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를 믿었던 투자자들 사이에 신뢰가 사라지면서 부도 위험은 치솟았다.

당시 코스피와 코스닥은 2.45%, 3.47% 급락했고, 환율은 18.4원 치솟아(원화 가치 급락) 달러당 1440원 가까이 올랐다. 회사채(AA-) 금리는 0.034%p 오른 연 5.342%를 기록했다. 그만큼 이자를 더 내야 돈을 빌려준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환율은 지난 8월 1일(1283.8원) 이후 5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만큼 달러를 팔고 원화를 사려는 수요가 많았다는 뜻이다.

태영건설 부도 위험 우려가 채권 투자자 사이에서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아 금리는 떨어졌다. 부도 우려에 채권을 앞다퉈 내다 팔면 채권값은 급락하고 채권 금리는 급등한다. 이날 회사채(AA-) 금리는 전날보다 0.06%포인트 하락한 연 3.898%에, 국채(3년 만기) 금리는 전날보다 0.066%포인트 내린 연 3.154%에 거래됐다.

다만, 태영건설 주가는 이날 오전 20% 폭락, 17% 폭등을 오가다 최종 3.7% 하락 마감하며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탔다.

증시 폐장식… 코스피 41.78p 오른 2655.28에 마감 28일 오후 부산 남구 부산국제금융센터에서 열린 2023년 증권·파생상품시장 폐장식에서 손병두(앞줄 왼쪽에서 넷째)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올해 증시 폐장을 알리는 버튼을 누르고 있다. 이날 시공 능력 국내 16위인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 개선 작업) 신청 소식에도 증시는 상승세를 보였다. 코스피는 전날보다 1.6% 오른 2655.28에 마감했고, 코스닥도 0.79% 오른 866.57에 거래를 마쳤다. /연합뉴스

◇이미 인지한 사건이라 충격 덜해

전문가들은 레고랜드 사태는 예상 못했던 깜짝 사건이었던 반면, 태영건설 워크아웃은 이미 어느 정도 알려졌던 사안이라 충격이 덜했던 것으로 평가했다. 금융시장에 이미 악재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통상 우려했던 사안이 현실화하면 주가는 오르는 경향이 있다.

이장연 인천대 교수는 “PF 불안 요소에 대해 시장이 인지하고 있었던 데다 금융 당국도 빠르게 시장 안정화에 대처했다”며 “미국의 금리 인상이 일단락되는 등 거시 경제 상황도 불안감을 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레고랜드 사태 때는 글로벌 금리 인상기였다. 사태 발생 이틀 전에도 미국의 긴축 부담이 커진 데다 영국이 감세 정책에 따른 재정 부실로 구제금융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코스피와 코스닥이 3~5% 급락했다. 반면, 현재는 미 연준이 금리 인상을 끝내고 내년부터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라 투자 심리가 작년 하반기보다 안정된 상태다.

정부가 PF 부실 충격에 대비하고, 확산을 저지할 것이라는 기대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태영건설은 전체 건설 업권의 문제로 보기 힘들 뿐더러 정부는 시장의 위기를 차단할 만한 충분한 방파제를 30조원 가까이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다른 건설사들로 부실이 옮겨붙으면 2011년 저축은행 PF 부도 사태처럼 위기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2011년 1월 삼화저축은행에서 시작된 불씨는 2015년까지 총 105개 저축은행 중 31개의 영업정지로 이어졌다. 한 증권사 임원은 “이번 사태는 알고 있던 위기가 현실화되는 상황을 뜻하는 ‘회색 코뿔소’로 확대될지, 아니면 ‘찻잔 속 태풍’에 그칠지 갈림길에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