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양진경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출시를 승인한 이후 한국 금융 당국의 대응이 일관되지 못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1일 미국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를 불허하는 유권해석을 내면서 캐나다·독일 등 다른 나라에 상장된 상품까지 거래를 중단시켰다. 그런데 14일에는 금융위가 “비트코인 선물(先物) ETF는 기존과 같이 거래가 가능하다”고 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는 살 수 없지만, 선물 ETF는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은 국내법상 비트코인은 투자 중개 대상이 아니고, 자칫 이를 허용했다가 자본이 급격히 빠져나갈 수 있다는 등의 문제를 얘기한다. 그러나 금융 당국은 이미 2021년 2월 캐나다를 시작으로 독일·호주·브라질 등 주요국에서 비트코인 ETF가 상장됐을 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국내 증권사들을 통해 이들 ETF에 거래가 이뤄졌다. 그러다가 미국에서 비트코인 ETF 승인이 나자 부랴부랴 거래를 막고 나섰다. 이를 두고 “일관되지 않고 뒤늦은 뒷북 규제”란 지적이 나온다.

개인 투자자들의 불만은 확산되고 있다. 비트코인 투자 커뮤니티에선 ‘외국 자본 들일 생각은 않고 유출만 걱정하는 쇄국 정책’ ‘비트코인 거래는 가능한데 ETF 거래를 못 하게 하는 웃기는 상황’ 등의 반응이 줄을 잇는다.

그래픽=양진경

◇비트코인 ETF 뒷북 규제

미국에 앞서 캐나다, 유럽 등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상장돼 이미 전 세계적으로 42억달러(약 5조5000억원)가 이런 ETF에 투자됐고 거래 중이다. 한 투자자는 “2021년 이후 3년간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가 느닷없이 정부가 규제하고 나서니 앞뒤가 안 맞는 모습”이라고 했다.

게다가 금융 당국이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사안에 뒤늦게 대응해 혼란이 커졌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작년 중반부터 SEC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은 국내외 투자자들의 큰 관심사였다. 하지만 금융위는 11일 오후에야 이와 관련된 유권해석을 내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들로서는 당연히 거래가 되는 줄 알고 있었는데 금융감독원이 11일 오후 5시 넘어 금융투자협회를 통해 급박하게 중지 방침을 내렸다”며 “증권사들로서는 호떡집에 불난 듯 전산 거래를 막는 등 비상이었다”고 했다.

금융 당국은 한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가 가능하려면 국회가 법을 고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은 ETF가 담을 수 있는 기초 자산으로 주식 등 금융 투자 상품, 국내외 통화, 농수산물 등 일반 상품을 인정하는데 비트코인은 그 가운데 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11일 “2017년 12월 범정부적으로 금융기관의 가상 자산 거래를 금지했고, 그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 정책은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면서 “독일·캐나다 등에 상장돼 거래될 때는 별말이 없다가 이번에 거래를 중단시킨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비트코인 현물이 거래되는 상황에서 ETF를 막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했다.

◇공지 번복 등 혼란했던 시장

당국의 모호한 입장에 시장에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키움증권은 11일 오후 4시쯤 SEC가 승인한 블랙록(IBIT)·아크인베스트(ARKB) 등 11개 ETF가 거래 가능하다고 홈페이지에 공지했다가 30분 만에 게시물을 내렸다.

일부 증권사들은 당국의 눈치를 보면서 비트코인 선물 ETF 거래도 중지했다가 번복하는 일도 벌어졌다. KB증권은 지난 12일 “비트코인 선물 ETF 23개의 신규 매수를 막고 매도만 가능하다”고 공지했다가 금융위가 뒤늦게 해외 비트코인 선물 ETF는 자본시장법상 중개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자 공지를 철회했다. 금융 당국은 비트코인 선물 ETF는 현물 ETF와 달리 운용회사가 직접 비트코인 투자는 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불편한 사람들은 쉽게 비트코인에 투자할 길이 생긴다고 기대했던 투자자들이다. 직장인 박모(39)씨는 “가상 화폐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사기 위해 계좌를 만들기는 번거로웠다”면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상장되면 증권사 앱을 통해 쉽게 거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투자하려고 마음먹었는데 갑자기 국내서는 거래가 안 된다고 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가상 화폐 투기 심리에 불이 붙으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특성상 정부가 신중히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2017년 가상 화폐 투기 광풍이 일었을 때 2030 세대가 불나방처럼 뛰어들며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졌다.

작년 초만 해도 2만달러대에 거래되던 비트코인 가격은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기대감에 올 초 4만7000달러 선까지 치솟았다가 차익 실현 매도세가 쏟아지며 최근 4만2000달러대까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