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자동차, 기아 본사 빌딩 모습. 2023.3.2/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탈출 기대감으로 최근 주가가 급등한 자동차·금융·유통 업종의 대표 종목이 여전히 미국·일본에 비해 크게 저평가돼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4일 한·미·일 3국 주요 업종의 대표 기업 주가순자산비율(PBR)을 비교·분석한 결과, 국내 자동차업종 시가총액 1위인 현대차의 PBR이 0.36배로 미국 테슬라(9.55배)는 물론, 일본 도요타(1.26배)에도 크게 뒤처졌다. PBR은 주가(시장가치)를 순자산(장부상 가치)으로 나눈 수치다. PBR이 1 미만이라는 것은 것은 회사의 시장가치가 장부상 가치만큼도 인정받지 못할 정도로 저평가됐다는 뜻이다.

그래픽=백형선

금융업종 1위인 KB금융의 PBR(0.44배)은 미국 JP모건(1.67배)의 4분의 1, 일본 미쓰비시UFJ파이낸셜(0.9배)의 절반 수준이었다. 유통업에서도 롯데쇼핑(0.25배)보다 미국 월마트(5.75배), 일본 패스트리테일링(6.33배)의 PBR이 훨씬 높았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중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가동해 저(低)PBR 종목의 가치 상승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적극적인 주주 친화 정책으로 주가를 높인다는 것이다. 배당 확대 등을 통해 PBR의 분모인 자산을 줄이고, 자사주 소각 등을 통해 분자인 주가를 높이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정부의 증시 체질 개선 프로젝트가 성공해 현재 0.95배인 한국의 PBR이 일본 수준(1.4배)까지 오를 경우, 코스피는 현재(2615)보다 53% 오른 4000도 가능할 것으로 증권업계는 전망한다.

그래픽=백형선

◇코스피 업종 76%가 PBR 1배 이하

국내 증시 저평가는 한두 업종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21개 업종 가운데 16업종(76%)의 PBR이 1배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PBR이 가장 낮은 업종은 한전 등이 포함된 전기가스(0.3배)였다. 최근 부동산 침체로 주가가 낮은 수준인 건설업(0.4배), 대표 규제 산업으로 평가받는 금융(0.5배)·통신(0.7배) 업종 등이 뒤를 이었다. 자동차가 포함된 운수장비(0.8배) 역시 저평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최근 업황이 좋아지고 있는 반도체 등이 속한 전기전자(1.5배), 제약·바이오사들로 구성된 의약품업종(4.1배)은 PBR이 높았다.

낮은 기업 가치로 인해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주요 지수에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해당 지수를 기준으로 삼는 글로벌 펀드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작년 말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세계 10대 자동차 및 부품사 리스트에 중국 전기차 비야디(BYD)가 신규 진입했지만, 현대차는 들지 못했다. 나머지 9개사는 미국 3사, 일본·독일·이탈리아 각 2사씩이다. MSCI 세계 10대 우량 기업 명단에도 대만 반도체업체 TSMC는 포함됐지만 삼성전자는 빠졌다.

◇주주 친화 정책 성공하면 주가 2배 이상 오를 것

전문가들은 적극적 주주 환원 정책을 ‘코리아 디스카운트’ 극복의 선결 과제로 꼽는다. 이남우 한국거버넌스포럼 회장(연세대 교수)은 “현대차·삼성전자·KB금융 등 대표 기업의 재무 비효율을 없애고 주주 환원을 제대로 하면 주가가 50~120%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구체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고 불필요한 부동산 및 주식을 팔아 배당 등으로 주주들에게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일본과 한국이 처한 환경이 다른 만큼 정책도 맞춤식으로 적용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저 PBR 종목의 재평가는 일본이 10년간 추진한 결과가 쌓인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말한다고 바로 현실화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일본의 PBR 수준은 한국에 과도하다”는 비관론(오태동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도 있다. KB증권은 “한국 증시는 중국과 상관 관계가 크기 때문에 주주 환원 정책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경우 기록적 엔저 현상에 일본은행(BOJ) 등 기관 큰손들이 주식을 사주면서 주가 상승을 뒷받침하고 있는 점이 한국과 다르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배당과 자사주 소각을 늘리는 주주 친화 정책과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정공법이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주가가 상승하려면 단순히 저평가를 벗어나는 것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이익 성장세가 뚜렷해야 한다”며 “기업 펀더멘털(체질)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자칫 정부의 증시 부양책으로 단타 투기꾼들만 이득을 보는 시장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PBR(주가순자산비율)

PBR(Price Book Value Ratio)은 주가를 주당 순자산 가치로 나눈 것이다. PBR이 1 미만이라는 것은 것은 회사의 시장가치(주가)가 장부상 가치만큼도 인정받지 못할 정도로 저평가됐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