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백형선

국내 금융회사들이 해외 사업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은 코로나 등으로 글로벌 진출이 주춤했지만, 다시 회사별로 해외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금융 디지털화와 지속 가능 금융의 확산 등 금융의 패러다임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고, 새로운 성장 모멘텀 확보 없이는 저성장 기조에서 벗어나는 전환점을 마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해외 근무 임직원은 총 2465명으로 3년 전보다 20% 늘었다. 국내에서 같은 기간 5대 은행 직원이 5% 가까이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비대면 거래 증가 등으로 국내 근무 인력은 줄였지만 해외 근무 인력은 지속해서 늘린 셈이다.

지난해 말 5대 은행의 해외 자산(원화 기준)은 200조원에 가깝다. 총자산의 8.3%에 해당한다. 해외에서 얻는 수익은 13조원으로 3년 전의 2배가 됐다.

◇국내 은행 해외 점포·자산 성장세

한국 금융회사들의 해외 진출은 201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내수 산업으로 여겨졌던 금융 산업은 1990년대 이후 해외 진출을 모색했지만 외환 위기와 카드 사태 등을 겪으며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국내 경제성장 속도가 줄고 금융회사 간 경쟁이 격화하자 다시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초기엔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차츰 성공 사례를 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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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금융은 3월 말 기준 20국에서 253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1분기 글로벌 당기순이익이 215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5.4% 증가했다. 전체 순익에서 글로벌 이익 비율이 지난해 1분기 11.4%에서 1년 새 16.3%까지 뛰어올랐다. 신한금융은 오는 2030년까지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수익 비율을 30%까지 높일 계획이다.

KB금융그룹은 글로벌 사업 비율을 높이려 선진국·동남아 위주의 ‘투 트랙(Two-Track) 전략’을 업그레이드한 ‘3X3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3X3 전략을 통해 글로벌 사업 지역을 동남아, 선진국, 신(新)대륙으로 나눈다. 현지 기업과의 제휴나 지분 투자(FI) 확대 등으로 투자 방식을 다변화한 것이 특징이다. 경영권 확보에 집중했던 기존의 인수·합병(M&A) 방식에서 벗어난 것이다.

하나금융그룹은 ‘글로벌 위상 강화’를 중점 추진 전략 중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이익 비율을 40%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주요 글로벌 금융사들과 업무 협약(MOU)을 체결하고 사업 확대를 위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다. 작년에도 5월 대만 CTBC은행에 이어 8월 인도 SBI은행, 9월 사우디 수출입은행 등 다양한 지역의 주요 은행과 MOU를 체결했다. 올해부터는 해외 직원을 대상으로 기업 문화 워크숍을 여는 등 소속감을 높이고 현지 직원들의 역량을 강화할 방법도 모색 중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1968년 시중은행 최초로 동경지점을 개설한 이래 올해 해외 진출 56년째를 맞았다. 2024년 4월 말 현재 24국 469개 글로벌 영업망을 구축, 국내은행 중 가장 광범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운용 중이다.우리은행은 성장 속도가 빠른 동남아 3대 법인에 올해 상반기 중 5억달러를 증자할 계획이다. 베트남법인은 올해 4월 2억달러 규모의 증자를 완료했다. 또 방산 수출의 유럽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폴란드에는 올해 안에 지점을 설치해 ‘K방산’의 지원군 역할을 담당할 계획이다.

기업은행은 현재 중국·인도네시아·미얀마 등 현지 법인 3곳과 뉴욕·도쿄·홍콩 등 국외 지점 9곳, 러시아와 폴란드에는 사무소 2곳을 운영 중이다. 국내 중소기업이 많이 진출한 국가에 거점 점포를 전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국내에서와 마찬가지로 해외에서도 중기 금융을 지원하는 정책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신용도와 인지도가 낮아 해외 진출 때 현지 은행들의 서비스를 받는 데 어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보험·증권사도 “해외로”

국내 주요 손해보험사들이 해외에서 보험 계약자들에게 걷은 보험료는 지난해 처음으로 1조원을 넘었다. 4년 새 규모가 2배로 커졌다.

현대해상은 글로벌 보험 시장의 43.7%를 차지하는, 세계에서 보험 시장이 가장 큰 나라인 미국에서 개인성 주택종합보험이라는 틈새시장을 노려 미국 현지 고객을 공략했다. 작년 말 기준 현지 고객은 7만여 명(증권 수 기준)에 달한다. 이렇게 쌓은 노하우로 미국 서부인 캘리포니아와 하와이까지 시장을 넓혔다.

KB손해보험은 1997년 KB금융그룹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인도네시아 시장에 진출했다. KB손해보험은 당시 인도네시아 3대 보험사인 시나르마스와 합작 법인을 설립했다. 현재는 본점 및 자카르타, 수라바야, 반둥 그리고 스마랑에 지점 총 4개를 운영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보험 제도, 환경, 문화 등이 한국과 다르기 때문에, KB손해보험은 현지화 노력에 공을 들였다. 1997년 이후 25년 이상 영업을 이어가며 현지 고객과의 접점을 넓힌 덕에, 지난해 기준 현지 고객 매출 비율이 약 38% 수준까지 늘었다.

한화생명은 국내 보험사 최초로 해외 은행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인도네시아 ‘리포그룹’이 보유한 노부은행의 지분 총 40%를 매입하기로 했다. 인구 2억8000만명에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를 주요 거점으로 동남아 시장 확대 전략을 펼 계획이다.

삼성생명은 글로벌 자산운용사에 대한 투자를 늘리며 해외 대체 투자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작년 4월 프랑스의 인프라 투자 전문 운용사 메리디암SAS의 보통주를 20% 취득해 2대 주주로 올랐다. 파리에 본사를 둔 메리디암은 27조원 규모 운용 자산을 유럽·북미 등 다양한 인프라 자산에 투자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2021년 5월에는 해외 부동산 투자를 다변화하기 위해 부동산 자산운용사 새빌스(Savills)IM의 지분 25%를 취득해 2대 주주가 됐다.

증권사의 경우 작년 말 기준 14사가 현지 법인 63개를 15국에서 운영 중이다. 베트남·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 신흥 시장 외에도 금융 선진국인 미국·영국 등 균형 있게 진출했다. 2018년 5조원이었던 해외 현지 법인들의 자기자본 규모는 2023년 2배로 성장했고 181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좋은 투자 상품을 물색해 국내 투자자들에게 공급하는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세계 최대 사모 펀드(PEF) 운용사 중 하나인 칼라일 그룹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사모 형태로 CLO(대출담보부증권)를 세 차례에 걸쳐 출시했다. CLO는 여러 기업의 담보대출(레버리지론)을 한데 모은 뒤, 여기서 발생하는 현금 흐름을 바탕으로 수익 증권을 발행하는 구조화 상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