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3일 발표한 공매도 제도 개선안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①공매도 시 개인이 기관에 불리하지 않게 투자 조건을 똑같이 맞추고, ②주식을 빌리지 않은 상태(무차입)에서 공매도가 이뤄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공매도 전산 시스템을 구축하며, ③'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은 불법 공매도 제재 수위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내년에 불법 공매도를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면 공매도를 재개할 것”이라며 “내년 3월 31일부터 공매도가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인, 기관과 같은 조건으로 공매도 가능
국내 주식시장 개인 투자자들은 주가 하락을 유발하는 공매도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 왔다. 하지만 주요국 주식시장이 모두 공매도 제도를 운영하는 데다 거품 낀 주가를 안정화하고, 주식시장 거래를 활성화하는 등의 순기능이 분명하기 때문에 폐지해선 안 된다는 것이 정부와 전문가들의 입장이었다.
우리나라는 미국·영국·일본 등 주요국과 비교해 공매도 관련 규제가 매우 강한 편이지만, 공매도에 대한 개인 투자자들의 불만은 계속 증폭됐다. 이에 정부는 개인과 기관의 공매도 투자 조건을 동등하게 맞춰주겠다는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공매도를 없앨 수는 없으니 개인들도 기관처럼 더 쉽게 공매도를 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공매도를 위해 주식을 빌렸을 때, 갚아야 하는 기간을 개인과 기관 모두 90일(연장 포함 총 12개월)로 맞추기로 했다. 현재 기관은 상환 기간에 별다른 제약이 없는데 조건이 훨씬 까다로워졌다. 주식을 빌리며 제공해야 하는 담보 비율도 개인과 기관이 같아졌다(현금 105%, 주식 135%). 현재는 개인이 공매도를 하려면 기관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나 주식을 맡겨야 했지만, 이제는 기관이 맡기는 만큼만 하면 된다.
◇무차입 공매도 막기 위한 전산 시스템 구축
국내 주식시장에서 큰 문제가 된 기관들의 잘못된 투자 관행 중 하나가 무차입 공매도였다. 공매도를 하려면 주식을 미리 빌린 뒤, 매도 주문을 넣어야 한다. 하지만 기관들은 주식도 없는 상태에서 증권사에 일단 매도 주문을 내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차입 공매도는 주식시장을 교란시킬 수 있기 때문에 국내 현행법상 불법이고, 다른 나라들도 모두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작년부터 올해 사이 BNP파리바, HSBC, 크레디트스위스(CS)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수백억 원대 무차입 공매도를 한 사실이 적발된 바 있다. 기관들은 “주식 잔고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거나 “직원 간 의사소통에 착오가 있었다”고 해명했으나 정부는 무차입 공매도가 관행화하고 있다고 보고, 이를 원천 봉쇄하기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기로 했다.
개선안에 따르면, 기관들은 올해 4분기까지 자체적으로 매도 가능 잔고를 관리하는 전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 시스템은 매매 내역을 실시간 반영해 주식 잔고를 초과한 매도 주문을 자동으로 거부하게 했다. 또 차입 승인 전에는 공매도할 수 없게 돼 있다. 수기로 공매도 수량을 바꿀 때에는 상급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밖에도 기관은 잔고 관리 시스템 관리 부서를 지정하고, 무차입 공매도 발생 여부 등을 상시 점검해야 한다. 기관별 시스템과 별개로 한국거래소가 모든 매도 주문의 무차입 공매도 여부를 상시 탐지하는 ‘공매도 중앙 점검 시스템(NSDS)’도 내년 3월까지 구축하기로 했다.
◇불법 공매도 처벌 강화... ”실효성에는 의문”
정부는 무차입 등 불법 공매도를 한 경우, 처벌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처벌 수위가 낮아서 기관들이 불법 공매도에 경각심을 갖지 않는다는 비판을 수용한 조치다. 먼저 불법 공매도에 대한 벌금형은 현행 부당이득액의 3∼5배에서 4∼6배로 상향 조정한다. 부당이득액이 5억원 이상인 경우 징역형을 내릴 수 있는데, 부당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인 경우 최장 무기징역까지 가능해진다. 이에 더해 불법 공매도 또는 불공정 거래를 한 경우 국내 금융투자상품 거래가 제한될 수 있다. 금융회사·상장사 임원 선임 최장 10년간 제한 등의 제재도 도입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날 정부의 공매도 제도 개선안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먼저 공매도 전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기관들이 실시간으로 보유한 주식을 한 주씩 관리하는 전산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데다 글로벌 IB, 연기금 등이 한국에서의 투자를 위해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야하는 시스템 개발에 순순히 나서겠느냐는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공매도 주문이 나가기 전에 차입, 무차입 여부를 정해서 사전에 차단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기관의 실수를 걸러내지 못했다며 증권사를 제재하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공매도 거래에서의 기관·개인 투자자 간 형평성을 맞춘 것도 섣부른 결정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반 주식 투자보다 손실 위험이 높은 공매도에 대한 접근성을 무조건 높이는 것이 개인 투자자들을 위한 것인지는 고민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주식시장 전문가는 “공매도 시 개인 투자자 보호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