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출 한도를 더 줄이는 ‘2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시행을 돌연 두 달 연기하기로 했다. 지난 2월 1단계 규제 시행 이후, 적용 대출 범위를 넓히고 대출 한도를 더 줄이는 2단계 규제를 7월 1일부터 적용할 예정이었으나 시행 일주일을 앞두고 미뤄지게 된 것이다.
◇스트레스DSR 2단계 시행, 두 달 연기
금융위원회는 25일 관계기관과 협의를 거쳐 이 같은 내용의 ‘하반기 스트레스 DSR 운용방향’을 발표했다. 스트레스 DSR은 미래의 금리 변동 위험을 반영해 실제 대출 금리에 ‘스트레스(가산) 금리’를 더해 대출 한도를 산정하는 제도다. 대출자 소득은 그대로인데 가산 금리를 적용하면 대출자가 갚아야 하는 연간 이자 비용이 늘어난다. 이에 따라 대출 원금을 줄여야 DSR 비율을 맞출 수 있다. 그래서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것이다. 금융위는 스트레스 DSR을 모든 대출에 적용하되, 업권과 대출 종류에 따라 단계적으로 도입할 예정이었다. 지난 2월 26일부터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에 적용하기 시작했고, 올 하반기부턴 은행권 신용대출과 2금융권 주택담보대출로 확대하기로 돼 있었다. 가산 금리 적용 비율도 단계적으로 늘려간다는 방침을 세운 바 있다. 올해 상반기엔 25%, 하반기에는 50%를 적용했다.
금융위는 시행 계획을 갑자기 두 달 미룬 배경에 대해 “범정부적 자영업자 지원대책이 논의되는 상황이고, 이달 말 시행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성 평가 등 전반적인 부동산 PF 시장의 연착륙 과정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금융위 관계자는 “2단계 스트레스 DSR이 시행되더라도 DSR을 적용 받는 모든 차주의 한도가 감소하는 게 아니라 ‘고DSR’ 차주들의 최대한도가 감소하는 건데 자금 수요가 긴박한 분들이 많다”면서 “제2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대출이 줄어드는 차주가 약 15% 정도로 분석돼 이분들의 어려움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스트레스 DSR로 인해 실제 대출한도가 제약되는 ‘영끌’(고 DSR) 차주 비중은 약 7∼8% 수준이라고 밝혔다. 돈을 빌린 사람 대부분이 제도 시행과 상관없이 기존과 같은 수준의 한도와 금리를 적용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오는 9월부터 2단계 스트레스 DSR이 시행될 경우, 차주별 DSR 최대 대출한도는 은행권·제2금융권 주담대의 경우 대출유형에 따라 약 3∼9%, 은행권 신용대출은 금리 유형과 만기에 따라 약 1∼2%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집값 부채질한다는 지적도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을 두 달 연기한 것에 대해 정부가 부동산 회복기에 집값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요 시중은행들의 대출금리 하단이 속속 2%대까지 내려앉고, 주요 시중은행의 가계대출이 불어나는 등 불안 조짐을 보이는데도 대출 한도 축소 조치를 미루는 것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가계부채 축소 기조를 이어온 기존의 금융 당국 방침과 배치된다는 지적도 있다.
시중은행들은 2단계 규제 시행을 앞두고 대출한도 축소 시뮬레이션 등을 돌리는 등 대대적인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 발표로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일부 은행은 이미 2단계 시행 방침을 고객들에게 모두 안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렇게 갑자기 규제가 전면 연기된 것은 보기 드문 일”이라며 “고객들에게 최근 대출 한도가 줄어든다고 안내를 해왔던 터라 다시 바뀐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금융위가 시행 연기 이유로 든 서민·자영업자 대출이 축소될 수 있거나 부동산 PF 연착륙 과정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도 인과 관계가 불명확하다는 의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