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은 미국과 유럽 사이에서 결정된 외부 요인의 영향 아래 있습니다. 미국의 금리 인하가 큰 폭으로 이뤄질 것 같지 않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도 내년까지는 달러당 1300원 이하로 떨어지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승헌 한국은행 전 부총재는 지난 8일 인터뷰에서 “원·달러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국내외 요인들에 당분간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같이 전망했다. 이 전 부총재는 1991년 한국은행에 입행한 뒤 자본이동분석팀장, 외환시장팀장, 국제국장, 금융통화위원을 거치며 환율과 외환 보유액 관리, 외환시장 운영, 자본 유출입 분석을 담당한 외환 분야 전문가다.

이승헌 한국은행 전 부총재는 인터뷰에서 “원·달러 환율이 당분간 하락할 요인이 별로 없다”며 “미국이 금리를 인하해도 1달러당 1300원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훈 기자

-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400원 선에 육박했는데.

“연초에 1294원이었는데 6개월 새 90원가량 올랐다. 상승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1100원, 1200원대 환율에 익숙한 정부나 기업, 가계에는 매우 낯선 상황이다. 2022년 하반기에도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 등으로 환율이 급등해 달러당 1400원을 넘었던 적이 있다. 환율 수준이 높기도 했지만, 단기간에 급등해 금융시장이 매우 힘들었다. 올해는 그때보다는 상승 폭이 작고 추세도 완만해 금융시장이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환율이 달러당 1400원을 넘어가는 데 대해서는 부담이 클 것이다.”

- 계속 오르는 이유는?

“외환시장 업무를 해보니 원·달러 환율은 한국과 미국의 관계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미국과 유럽 간에는 상품 거래 외에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 대규모 금융 투자 거래가 있는데, 큰 투자 자금이 두 지역 간의 금리 차이에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의 금리 정책이 두 지역 간 환율의 주된 결정 요인이 되고, 이것이 다른 국가 환율에 큰 영향을 미친다. 좀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미국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연초 이후 지금까지 4.55% 정도 올랐다. 같은 기간 달러 가치와 반대로 움직이는 원화 가치는 7.12% 하락(원화 환율은 상승)했다. 7.12% 중 4.55%포인트는 달러 강세에 따른 결과이고, 나머지 2.57%포인트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국가별 투자 자산 배분, 엔화와 위안화처럼 한국과 무역 거래가 많은 나라 통화 가치의 변화, 한국의 통화 정책, 외환시장의 심리 변화, 한반도의 지정학적 요인의 영향을 복합적으로 받았다는 뜻이다.”

그래픽=양진경

- 수출 호조로 달러가 유입되고 있는데도 환율이 상승하고 있다.

“환율이 오르는 것을 시장의 달러 수급으로만 설명하려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오히려 원·달러 환율이 외부에서 주어지고 이 환율에 의해 국내 외환시장의 수급이 영향을 받는 측면이 강하다. 외환시장에서는 수출입 대금, 투자 자금 등 소위 리얼 머니(real money)보다도 환율 전망에 돈을 거는 외환 트레이더들의 포지션 거래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국민연금처럼 예외적인 곳이 있긴 하지만, 기업·개인 등 외환시장 참가자들이 예전과 달리 보유 달러를 전부 시장에 내놓지 않고 환율을 봐가며 스스로 관리하는 기술이 많이 늘었다. 지금 원·달러 환율 상승은 외환 수급보다는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진행되는 달러 강세 영향이 가장 크므로 미국 경제와 통화 정책 방향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 한국 금리가 미국보다 너무 낮아 환율이 오르는 것 아닌가?

“한국의 기준금리가 너무 낮아서라기보다는 미국의 기준금리가 높아서 환율이 상승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나라의 기준금리는 그 나라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반영한다. 미국은 경기가 좋아 금리가 높은 것이다. 만약 한국 기업들이 미국 기업보다 공격적이고 한국에 투자 기회가 많다면 금리가 상승하고 원화 가치도 상승(환율은 하락)할 것이다.”

외환 전문가들은 한국의 기준금리가 낮아서라기보다는 미국의 기준금리가 높아서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사진은 한국의 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의 지난 5월 23일 회의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 외환시장 운영이 지난 1일부터 새벽 2시까지 연장됐는데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24시간 동안 움직이는 원·달러 NDF(차액결제선물환) 시장에서 원·달러 거래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 환율이 계속 올라가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수출은 좋아지지만 수입업체들은 수입 대금 부담이 커진다. 경제 전체적으로 환율 상승은 원유 등 수입 물가를 올려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기업들의 환율 불확실성이 커지며 경제활동을 위축시킨다. 해외 투자자들도 원·달러 환율이 계속 올라가면 환 손실 때문에 투자를 늘리기 쉽지 않다.

또 다른 문제는 금융회사들의 대차대조표에 문제가 생긴다는 점이다. 환율이 올라가면 예컨대 은행들이 가진 외화 대출의 원화 환산액이 커진다. 그만큼 위험 자산이 증가하기 때문에 BIS(국제결제은행) 기준의 위험 자산 대비 자기자본 비율이 하락한다. 은행들은 정기예금 유치 등을 통해 재무구조 개선에 나서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시중금리가 상승하는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 2022년 가을 환율 급등 때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다.”

환율이 상승하면 금융회사들이 추가로 자본을 확충해야 할 필요성이 생겨 금융시장 불안의 요인이 된다. 사진은 서울 시내의 시중은행 현금인출기 모습. /뉴스1

-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나?

“환율 변동의 속도가 너무 빠르면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여러 문제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정부와 한국은행이 시장에 개입해 단기 충격을 완화시킨다. 하지만 환율의 추세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정부의 시장 개입이 단기 효과는 주지만 몇 개월씩 갈 수는 없다.”

- 환율 상승세가 한은의 금리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예전에는 통화정책이 환율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는데, 요즘은 시장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금리를 올린 뒤 내리는 전환기이기 때문인 듯하다. 해외 투자자들이 국내 시장에 계속 머물게 하려면 환율이 안정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과 외환 보유 상황에 대한 외국인들의 신뢰가 크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한은이 금리 결정에 환율 문제를 보다 많이 고려할 것 같다.”

환율은 수입 물가와 직결되기 때문에 한국은행은 향후 금리 정책에서 높은 환율 변수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사진은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지난 4월 12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교하면?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우리 경제가 대외 충격에 매우 취약한 구조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한국의 단기 외채가 너무 많았던 측면이 있다. 이후 경상수지 흑자가 크게 확대됐고, 단기 외채 규제도 많이 해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외환 보유액이 확충되었을 뿐 아니라 2014년부터는 한국의 대외 채권이 대외 채무보다 많은 순채권국으로 바뀌었다. 환율이 오르고는 있지만,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교할 이유는 없다. 현재 외환시장은 훨씬 안정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 원·달러 환율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까?

“개인적으로 보면 당분간 1달러당 1370원 이하로 내려갈 요인이 많지 않다.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거나 미국 금리가 쉽게 내려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주식시장도 강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혹시 미국 주가가 급락해 미국이 금리를 내리더라도 안전 통화로서 달러는 여전히 강세를 보일 수 있다.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금리가 큰 폭으로 인하됐지만, ‘달러 외에 대안이 없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달러가 오히려 강세를 보였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뚫고 올라갈 가능성 또한 크지 않아 보인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일시에 그칠 것이다.”

미국 금리가 내려도 달러화는 여전히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사진은 지난 7월 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와 엔화를 정리하는 모습. /뉴시스

- 미국이 금리를 다시 올릴 가능성이 있나?

“크지 않다. 다만 현재의 상황이 지난 1970년대 2차례 오일쇼크가 있을 때와 비슷해 인플레이션의 재상승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당시 금리 인상으로 물가를 안정시켰지만, 인플레이션 심리가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중동 전쟁, 이란 혁명 등으로 공급 측면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물가가 더 큰 폭으로 상승했던 상황이 재발될 가능성 때문이다. 지금도 중동 불안, 미국 보호무역주의의 강화, 기후 변화에 따른 농수산물의 공급 부족 등 공급 측면에서 1970년대 오일쇼크 같은 충격이 발생할 잠재 요인이 많다.”

- 미국이 금리 인하를 시작하면 원·달러 환율이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미국이 금리를 크게 내릴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미국의 달러 강세가 내년 이후까지 상당 기간 지속될 것 같다. 가끔 한국 자체 요인에 따라 환율이 급등락하기도 한다. 지난 2018년 미국과 북한 간 정상회담 당시에 원화가 강세로 움직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요인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공급 측면에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요인은 아직 많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사진은 미국의 금리 정책을 지휘하는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이 지난 6월 12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 기준금리 인하가 세계적 대세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데.

“전 세계가 모두 금리를 내릴 수 있을까? 국가마다 상황이 많이 다르다. 호주는 최근 물가가 재상승하면서 통화정책 회의에서 금리 인상이 논의되었다는 관측이 있다. 캐나다는 6월 초 금리를 내렸으나 지속적으로 하락하던 소비자물가가 5월 다시 반등하면서 7월 추가 인하가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 한국은 언제쯤 금리를 내릴까?

“6월 소비자물가가 2.4% 상승으로 나왔다. 물가만 보면 금리를 내릴 여건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가계 대출이 늘어나고 있고, 부동산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결국 물가 상승에 영향을 준다. 인플레이션 기대감이 채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금리를 너무 빨리 인하하면 시장에 잘못된 인식을 줘서 물가가 안정 궤도에서 이탈할 수 있다. 중앙은행은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확실한 의지를 시장에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