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박상훈

직장인 신모(31)씨는 최근 생긴 목돈 1500만원가량을 묶어둘 곳을 찾다가 한 저축은행의 6개월짜리 정기예금에 가입했다. 이율은 연 3.7% 수준이다. 신씨는 “만기 1년이 넘는 상품들과 금리 차이가 크지 않고, 내년에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몰라 일단 만기가 짧은 상품에 가입했다”며 “수시 입출금이 가능한 파킹통장도 금리가 낮지 않지만, 자꾸 돈을 빼 쓰게 되는 경향이 있어 6개월 정기예금을 택했다”고 했다.

과거 목돈을 모으거나 굴릴 때 3년짜리 적금, 1년짜리 정기예금 등 길게 저축하던 예·적금 공식이 깨지고 있다. 최근 금융권에서는 6개월, 9개월 등 저축 기간을 짧게 하면서도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단기 저축 상품들이 연달아 출시되고 있다.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짧게 돈을 굴리는 유동성(돈) 확보 효과가, 금융업계에서는 금리 인하를 앞두고 장기 고금리 상품 대신 단기 상품으로 고객을 유도할 수 있다는 효과가 있다.

◇‘6개월 저축보험’도 등장

지난 22일 SBI 저축은행은 9개월짜리 정기예금을 새로 내놨다. 그동안에도 만기 기간을 9개월로 설정할 수는 있었지만 대신 금리가 낮았는데, 이번에는 12개월 만기와 똑같은 금리를 주기로 했다. 금리는 연 3.7~3.9% 수준이다. 앞서 애큐온 저축은행도 이달 ‘나날이 적금’을 출시했다. 100일 동안 매일 금액을 넣으면 최대 연 12% 금리가 적용되는 상품이다. 가입 기간은 100일로 3개월 남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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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은행권 관계자는 “특히 최근 젊은 세대들은 장기적으로 한 상품에 돈을 모으는 걸 부담스러워하고 잘 못하는 경향이 있다”며 “또 돈이 필요한 젊은 세대일수록 현금 유동성이 중요하다 보니, 목돈 만들기를 할 때 단기 상품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최근에는 보험업계에서도 이런 젊은 세대들의 수요 공략에 나섰다. 지난 20일 삼성생명은 만기 6개월짜리 초단기 저축보험 ‘삼성팝콘저축보험’을 내놨다. 보통 저축보험이 만기가 10년 이상인 경우가 많은 걸 감안하면 이례적인 상품이다. 월 최대 납입액은 60만원이고, 추가 납입에 관한 모든 조건을 만족시킬 경우 추가 납입 보험료에 대해 최대 연 8%까지 이자를 준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장기 보험은 젊은 세대들에게 진입 장벽이 높다 보니, 재미 요소를 넣어 유입을 늘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최근 가입자 중 2030세대 비율이 27.7%로 전체 상품 가입자에 비해 2배로 높다.

◇한 달 정기예금도 3%대

최근 출시된 상품 외에도 시중에는 한 달짜리 등 단기 예·적금 상품 등이 이미 운영 중이다. 29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이달 기준 인터넷은행들을 포함해 한 달짜리 정기예금 금리는 연 3.21~3.55% 수준이다. 시중은행 1년 정기예금 금리가 연 3.4%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차이가 크지 않다.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단기 예·적금 상품을 내놓을 수 있게 된 건 오래되지 않았다. 앞서 2022년 11월 한국은행이 기존 예·적금 최단 만기 기간을 6개월에서 1개월로 단축하는 내용의 금융기관 여수신이율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고, 작년 4월부터 바뀐 규정이 적용돼 시행 중이다.

최근에는 6개월 미만 정기예금 잔액도 다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올해 초 201조원대까지 늘었던 잔액은 지난 3, 4월 감소했다가 5월부터 두 달 연속 늘어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예금 은행의 6개월 미만 정기예금 잔액은 190조원이 넘는다. 이달 13일 전북은행이 6개월짜리 정기예금 상품에 연 3.55% 이자를 주는 특판을 1000억원 한도로 내놨는데, 보름도 안 돼 할당액의 90%가량이 나가기도 했다.

◇자금 용도에 따라 예금 기간 따져야

오는 9월 미국의 금리 인하가 기정사실화됐고, 한국도 곧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금리 인하기에 금융 소비자들은 예금은 장기로 드는 게 유리하다는 게 통념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통념과 달리 이처럼 단기 예금이 느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최근 미국 대선과 주식시장 등 변동성이 큰 상황이다 보니 ‘방망이를 짧게 잡으려는’ 수요가 늘었다”고 설명한다. 은행들 입장에서도 금리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약속한 기간 동안 높은 금리를 줘야 하는 ‘장기 고금리’ 상품보다는 단기 상품이 더 부담이 적다.

다만 단기 예·적금 가입에 앞서 유불리를 따져보는 게 필요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필요할 때 쉽게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유동성 측면에서는 유리하지만, 향후 금리가 떨어질 것을 생각하면 꼭 단기 상품만 찾을 필요는 없다”며 “당장 돈 쓸 곳이 없다면 장기로 예금과 적금을 드는 게 유리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