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예금자 보호 한도를 현행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하기로 합의하면서, 새로 예금자 보호 대상이 되는 233조원에 이르는 돈의 향배가 어디로 갈지에 관심이 쏠린다. 예금자 보호 한도는 은행·저축은행·보험사 등 금융회사가 파산할 때 고객이 맡긴 돈을 보장해 주는 제도인데, 지금까지는 전체 예금의 약 50%인 약 1456조원이 이 한도 내에 있었다. 그런데 한도가 1억원으로 올라가면 약 233조원에 이르는 예금이 추가로 보호될 것으로 보인다.
이 돈의 향배를 놓고 은행과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 금융회사들은 저마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장 더 많은 돈이 보호되기에 저축은행이나 상호금융 등 금리가 높은 곳으로 자금이 몰려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저축은행 입장에서는 자금을 조달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느라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 마냥 반길 일은 아니라는 말도 나온다.
◇0.2%포인트 금리 차이에 고객들 옮겨갈까
국회 정무위원회는 이달 25일 법안소위를 열어서 예금자 보호 한도를 1억원으로 올리는 법안 마련에 들어간다.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현재 예금자 보호 한도를 올리기 위해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8개다. 이 가운데 국민의힘 소속 의원이 제출한 법안이 3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린 법안은 5개다. 법안 8개 중 5개가 한도를 1억원으로 올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 정무위 관계자는 “큰 틀에서는 1억원으로 올리는 내용에 합의됐지만, 언제부터 시행할지 등을 놓고서는 조율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도 “한도를 올리는 데는 찬성하지만, 현실적으로 시행 시기를 늦추는 방안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시행 시기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이유로는 2금융권으로 ‘머니 무브’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5000만원이 추가로 보호되는 만큼 소비자들이 더 높은 이자를 좇아 저축은행이나 상호금융 등으로 예금을 옮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금융학회에 따르면, 예금자 보호 한도를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리면, 저축은행 예금은 40%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예금이 증가할 것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축은행으로의 머니무브가 생각보다 약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간 금리 차이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시중은행의 예금 금리(1년 만기)는 약 3.35%로 저축은행(약 3.55%)과 차이는 0.2%포인트에 불과하다. 가령 4800만원을 시중은행에서 빼내서 저축은행으로 옮길 경우 1년간 챙기는 이자는 136만368원에서 144만1584원으로 8만원 정도 증가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자를 8만원 더 받자고, 귀찮게 저축은행으로 5000만원이나 되는 큰돈을 옮기겠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시중은행에 더 많은 예금을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증가하는 비용에 소비자가 피해 볼 수도
예금이 늘어나는 만큼 각종 비용이 증가할 수 있어 은행뿐만 아니라 저축은행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예금보험료다. 금융회사들은 고객들로부터 예금을 유치하면 일정 비율의 보험료를 예금보험공사에 지급한다. 만약 금융회사가 지급 불능 상태가 되면 예보는 해당 금융회사를 대신해 예금을 지급한다. 현재 금융회사가 예보에 내는 예금보험료율(잔액 대비)은 은행이 0.08%이고. 저축은행은 0.4% 수준이다. 한도가 1억원으로 오르면 추가로 보호되는 금액(233조원)에 대한 보험료도 증가해 금융사들은 적지 않은 부담을 추가로 짊어져야 한다. 한국재무관리학회는 “저축은행에 예금이 한도 이상으로 많이 들어오면 자금 조달 비용이 상승할 수 있다”며 “저축은행이 이를 만회하기 위해 고수익·위험 여신 운용에 나서면 경영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오히려 소비자만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이나 저축은행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비용이 증가하는 상황이다 보니 소비자가 받아갈 예금 금리를 낮추거나 수수료를 올려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