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통신업계와 CJ ENM 간 콘텐츠 사용료 갈등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CJ ENM은 최근 프로그램 사용료 협상 결렬을 이유로 LG유플러스의 모바일 TV에 대해 방송을 끊었고, KT의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 대해서도 사용료 1000%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CJ ENM은 인터넷 TV(IPTV) 3사인 KT·LG유플러스·SK브로드밴드에도 사용료 인상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CJ ENM발 사용료 전쟁이 ‘플랫폼 회사’에서 ‘콘텐츠 제작사’로의 권력 이동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 방송 잘 나올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던 콘텐츠 제작사가 이제 “제값 안 주면 프로그램을 끊겠다”고 큰소리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유료 인터넷·케이블방송을 해지하고 OTT로 옮겨가는 이른바 ‘코드 커팅(Cord-cutting)’ 현상도 이런 변화를 가속시켰다는 분석이다.

◇“콘텐츠 제값 받기” vs “과도한 인상 요구는 갑질”

지난 12일부터 LG유플러스의 ‘U+모바일tv’에서 제공하던 tvN, 엠넷, 투니버스 등 CJ ENM 10개 채널의 송출이 중단됐다. 그동안 콘텐츠 사용료 협상을 벌여왔던 두 회사가 합의에 실패해 ‘블랙아웃(송출 중단)’이라는 결과를 맞은 것이다. 2019년 9%, 지난해 24% 사용료를 인상했던 CJ ENM이 올해 175% 사용료 인상을 요구하자, LG유플러스가 수용을 거부한 것이다.

CJ ENM의 콘텐츠 사용료 분쟁은 전방위로 확산 중이다. CJ ENM은 KT의 OTT ‘시즌’과도 사용료 협상을 진행 중인데, 20억원대였던 사용료를 200억원대로 올려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IPTV 3사와의 프로그램 사용료 협상도 인상 폭에 대한 양측 입장 차가 커 난항이다. 업계에서는 CJ ENM 프로그램의 송출 중단 사태가 ‘U+모바일tv’뿐 아니라 KT ‘시즌’, IPTV까지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CJ ENM은 ‘지나치게 낮았던 콘텐츠 사용료를 정상화하는 과정'이라는 입장이다. CJ ENM 측은 “한국에선 콘텐츠 사용료로 제작비 3분의 1 수준을 받지만 미국에서는 120%까지도 받는다”며 “콘텐츠에 대해 제값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통신·IPTV 업계는 무리한 사용료 인상은 시장지배적 위치에 선 CJ ENM의 갑질 횡포라고 반발한다. IPTV 3사는 “단 10개 채널을 제공하는 CJ ENM이 통신·IPTV 업계가 내는 프로그램 사용료 전체의 30%를 가져간다”며 “그런데도 사용료를 더 받겠다는 건 중소형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의 몫까지 뺏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KT 관계자는 “사용료를 단번에 10배 올리겠다는 건 사실상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다른 회사 OTT는 고사시키고 자사 OTT(티빙)를 키우겠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코드 커팅' 패러다임 전환도 맞물려

CJ ENM의 콘텐츠 사용료 전쟁은 큰 틀에선 미디어·콘텐츠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의 힘겨루기다. 특히 넷플릭스의 성공 이후, ‘킬러 콘텐츠’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면서 콘텐츠 제작사로 무게 중심이 급속하게 이동하고 있는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방송 프로그램이 다 나오는 IPTV 대신 입맛에 맞는 OTT 2~3개를 모바일로 시청하는 ‘코드 커팅’ 추세도 이런 변화를 촉진한 것으로 보인다. CJ ENM은 OTT ‘티빙’을 운영하고 있다. IPTV라는 기존 플랫폼을 통하지 않더라도 자신들의 콘텐츠를 자체 유통할 강력한 플랫폼을 쥐고 있는 것이다. 특히 CJ 그룹은 케이블TV(CJ헬로) 매각 이후 티빙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CJ ENM은 앞으로 5년간 5조원 이상을 콘텐츠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며, “티빙이 국내 1위 OTT로 성장하도록 아낌없이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내 OTT 2위인 티빙(가입자 수 327만명·3월 기준)은 1위 웨이브(368만명)와의 격차를 빠르게 좁혀가고 있다.

CJ ENM의 이런 공격적인 행보는 올 3월 강호성 대표이사로 취임 이후 시작됐다. 그는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IPTV가 수익 분배에 인색하다”고 비판했지만 IPTV 3사는 “CJ ENM은 시청률 낮은 채널까지 끼워팔기 방식으로 협상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CJ ENM 채널 공급 중단으로 인한 이용자 불편, 사업자 간 협상 과정에서의 불공정행위 및 법령상 금지행위 해당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