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구글의 인앱결제 강제를 금지하는 법안(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써 한국은 애플과 구글이 부과해온 ‘앱 장터 통행세’를 법으로 막은 최초의 나라가 됐다. 이번 법 통과는 유럽과 미국 등에서 추진되고 있는 두 기업에 대한 반독점 규제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국내 IT 업계는 법안 통과를 환영하고 나섰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은 “과도한 수수료뿐 아니라 구글이 앱 개발사의 결제 시스템 선택권을 박탈하고 거래 정보까지 독점하려는 시도를 막은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초의 구글·애플 ‘갑질’ 방지법

이 법은 구글·애플 같은 앱 장터 사업자가 특정한 결제 방식을 강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게 핵심이다. 현재 애플은 자사 앱 장터 ‘앱스토어’를 통해서만 각종 앱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앱에서 결제할 때도 애플 시스템만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결제액의 30%를 수수료로 챙긴다. 구글도 오는 10월부터 자사 앱 장터 ‘구글 플레이’에서 내려받은 앱은 구글의 결제 시스템만을 이용하도록 강제하고 역시 30% 수수료를 받는 이른바 ‘인앱결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구글은 지금까지 입점 업체들이 앱 내에서 자체 결제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을 일부 허용했지만, 앞으로는 이를 완전히 막겠다는 것이다.

구글이 지난해 7월 강제적인 인앱결제 정책과 수수료 30% 부과 계획을 발표하자,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IT 업계와 웹툰·영화 창작자들은 ‘앱 통행세’라며 강력히 반발해왔다. 미국 유명 게임사 에픽게임즈는 구글과 애플의 강제적인 인앱결제를 막아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국내 IT 및 콘텐츠 업계도 “국내 앱장터 점유율이 80%가 넘는 구글의 인앱결제 강제 정책이 도입되면 추가 비용만 연간 2조원대”라며 정치권이 법적 규제에 나서달라며 호소했다.

구글과 애플은 “앱 장터를 건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인앱결제 강제와 수수료 부과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중소 개발사에 대해서는 수수료 절반을 깎아주겠다며 유화 전략도 써왔다. 애플이 최근 자신들에게 반독점 소송을 건 미국 개발사들과 “수수료 감면 정책을 3년간 유지하고, 외부 결제를 홍보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합의한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하지만 구글과 애플이 인앱결제 전략을 유지하는 한 수수료 감면 등은 꼼수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수수료 인하 가능성, 통상마찰 우려는 적어

이번 법안 통과로 구글과 애플은 한국 시장의 결제 정책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구글과 애플이 중소 개발사와 상생 명목으로 반값 수수료 정책을 펴고 있지만, 이와 별개로 인앱결제를 강제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국내 IT 업계는 인앱결제가 금지되면서 앱 장터 수수료와 이용료가 대폭 낮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구글·애플 두 업체의 앱 장터뿐 아니라 원스토어 같은 새로운 앱장터 이용이 활성화되고, 다른 결제 수단을 다양하게 쓸 수 있으면 제대로 된 시장 경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수료를 내지 않는 만큼 기업들이 소비자에게 더 싸게 콘텐츠를 판매할 수도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이번 법안으로 네이버·카카오와 대형 게임업체들만 이익을 볼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구글과 애플이 연매출 100만달러(약 11억6000만원) 이하 기업과 개발자에게는 수수료를 감면해주고 있는 데다, 중소업체 입장에서는 다양한 앱 장터에 맞춰 앱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것이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안 처리 과정에서 구글과 애플 측은 미국 대사관 등 여러 경로를 통해 “통상 마찰이 빚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표명해왔다. 구글과 애플의 영업 활동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상 마찰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최근 과거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을 담당했던 웬디 커틀러 미국 아시아정책연구소 부소장을 인용해 “미국 내에서도 유사한 반독점 법안이 논의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이 협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