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2시쯤 대학에서 보낸 이메일 인터넷 링크를 누르자 노트북 화면에 ‘고려대학교’ 현수막과 함께 지하철 안암역 표지판이 세워진 가상 공간이 펼쳐졌다. 자동 생성된 아바타를 컴퓨터 키보드로 조종해 앞에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는 포스코·신한캐피탈·SGI서울보증 등 10여 기업의 ‘채용 설명회’ 부스가 차려져 있었다. LG유플러스 ‘IT웹 앱 개발·운영’ 직군 상담 부스 앞에서는 ‘안내’ 명찰을 단 직원들의 아바타 5명이 춤을 추고 있었다. 각 아바타는 “채용 상담 카드 작성해 달라” “무엇이든 물어봐 달라”며 학생들의 아바타에 말을 걸었다.

서울 시내 6개 대학이 메타버스를 활용한 온라인 취업박람회를 공동개최한다고 성균관대가 1일 전했다. 사진은 메타버스서 구현된 성균관대 취업박람회장. /성균관대

가상 세계(메타버스)에서 열린 취업 박람회에 수천 명의 학생이 모였다. 코로나로 대학이 대면 취업 박람회를 열 수 없게 되면서, 첨단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구인·구직 풍속도가 등장한 것이다. 1일부터 메타버스 플랫폼 ‘게더타운’(Gather Town)에서 열리고 있는 취업 박람회는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 등 서울 6개 시내 대학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2주간 삼성그룹 9개 계열사와 LG그룹 8개 계열사, KT·오뚜기·효성그룹 등 국내외 80여 기업이 순차적으로 참여한다. 일주일간 진행된 사전 접수에만 5000명이 등록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매년 각 대학이 자체적으로 개최하던 취업 박람회를 여러 대학이 함께 마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가상세계의 채용 박람회는 실제 박람회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박OO’ ‘양XX’ 등 이름표를 단 학생들의 아바타는 부스를 찾아가고, 상담 카드를 작성한 뒤 회사에 대한 설명을 듣느라 분주했다. 원하는 기업의 부스 앞에서 키보드를 누르면,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 등을 적어 낼 수 있는 링크로 연결됐다. 부스 앞에는 1~18번까지 순번이 적힌 대기석도 있었다.

인사 담당자와의 상담은 실시간 화상 대화로 이뤄진다. 학생 아바타가 인사 담당자의 아바타와 마주 서면 자동으로 화면이 연결됐다. 건물을 나서 옆 건물로 아바타를 이동하자 체육관처럼 꾸며진 공간에서 공개 채용 박람회가 열리고 있었다. 시간대별로 LG화학·SGI서울보증 등 대기업 인사 담당자가 등장해 “우리 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설명했다.

채용 박람회를 기획한 캠퍼스 리크루팅 업체 엔에이치알커뮤니케이션즈 관계자는 “코로나로 학생과 기업 간 연결이 쉽지 않은 만큼, MZ세대의 관심도가 높은 메타버스를 활용해 대면 상담과 같은 효과를 주려고 했다”고 했다.

학생들은 가상세계 박람회에 대해 높은 만족을 나타냈다. 사람이 북적거리고 발품을 팔아야 하는 현실 박람회보다 간편하고 원하는 정보는 더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상담 신청서를 낸 뒤에 기다리지 않고 다른 기업 부스를 돌아다니다가도 상담 순서가 되면 곧바로 부스로 돌아갈 수도 있다. 박람회 인터넷 게시판에는 ‘가고 싶은 박람회가 줄줄이 취소되며 속상했는데, 많은 정보 얻고 간다’ 같은 후기가 줄을 잇고 있다. 한 상담 부스에서 20분여간 상담을 받은 성균관대 재학생 이모(22)씨는 “메타버스가 궁금해서 들어왔는데, 실시간 영상으로 자동 연결돼 내친김에 상담도 받았다”고 했다. 기업도 반기는 분위기다. 실제 부스를 차리는 비용을 절감하면서 오히려 상담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각 대학들은 지난해 초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고 채용 박람회를 열지 못하게 되면서 졸업생들의 취업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상당수 대학이 화상회의 프로그램 등을 활용해 자체 비대면 설명회를 열었지만, 화상회의 프로그램이 제각각인 데다 노하우도 없어 대학과 기업 모두 난감한 상황이었다. 한 기업 인사 담당자는 “가상세계 박람회는 게임 등으로 메타버스에 친숙한 젊은 층의 만족도가 높은 데다, 기본적인 진행 방식이 현실 세계와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