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밤 충북 진천군 롯데글로벌로지스 진천 메가 허브터미널에서 공항 보안검색대를 닮은 인공지능(AI) 분류 설비가 컨베이어벨트 위의 택배들을 스캔해 크기별로 분류하고 있다. 이 설비에 탑재된 AI 이미지 인식 시스템은 롯데글로벌로지스 다른 물류센터에서 3년간 택배 이미지들을 학습한 덕분에 분류 정확도가 99%에 이른다. /신현종 기자

지난 20일 밤 9시 국내 2위 택배사 롯데글로벌로지스의 진천 메가 허브터미널에선 ‘상하차’ 작업이 한창이었다. 올해 1월 문을 연 이곳은 롯데글로벌로지스의 15번째 물류기지로, 전국에서 온 택배들이 크기·주소지별로 분류된 뒤 차량에 실려 전국의 목적지로 떠난다. 매일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12시간 동안 밤새 1500대 트럭들이 드나들면서 180만개 택배를 내렸다가 다시 싣는다.

이곳에선 84개 하차대별로 직원 1명씩, 210개 상차대마다 2명씩 배치돼 짐을 내리고 싣는다. 그걸 뺀 나머지 모든 작업, 즉 하차된 택배의 크기와 재질을 스캔해 중대형·소형·이형(異形)으로 분류해 그에 맞는 상차대로 옮기는 작업은 모두 LG CNS의 인공지능(AI) 분류 설비가 담당한다. 이로 인해 14만5000㎡ 크기의 터미널 내부는 윙윙 컨베이어 벨트 돌아가는 소리만 들릴 뿐 직원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택배가 하차대에서 상차대까지 이동하는 시간은 기존 물류 허브의 절반인 단 5분. 하지만 분류 정확도는 99%다. 최현기 롯데글로벌로지스 네트워크운영팀 수석매니저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시간당 택배 15만개를 처리하지만 근무하는 직원은 다른 물류 기지의 60% 수준”이라고 말했다.

국내 택배 물동량이 지난해 36억개를 돌파한 가운데 AI 시스템이 택배 처리 방식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택배를 차량에서 내리고 싣는 것을 제외한 모든 물류 처리 과정에서 AI가 해결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로지스틱스IQ에 따르면 물류 자동화 시장은 2021년부터 연평균 14%씩 성장해 2026년 300억달러(37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테트리스 게임하듯 포장... 바코드 대신 상표 읽어

오후 9시 20분, 진천 터미널 관제센터의 대형 스크린에 ‘이형 라인에 물류가 몰리고 있다’는 경고가 떴다. 트럭 한 대가 일반 규격보다 폭이 넓은 박스 1000개를 컨베이어밸트에 올리자 이형 라인에 물량이 쏠릴 것을 염려한 AI가 보낸 메시지였다. 관제센터 직원은 일반 박스 분류 기준을 폭 570mm에서 600mm로 변경해 이형 라인으로 향하던 박스들을 중대형 라인으로 돌려 문제를 해결했다.

택배 물류기지에서 가장 주목받는 AI의 능력은 분류·검수 기능이다. 바코드 스캔 정도만 가능하던 기계들이 사람처럼 글을 읽고 보면서 판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국내 자동화 전문업체 SFA가 개발한 자동 분류 시스템은 AI 기반 문자판독 기술로 바코드가 아닌 상품 포장지의 한글·영어·숫자를 읽고 분류할 수 있다. LX그룹 계열사 LX판토스는 배송 전 고객 주문대로 상품이 박스에 잘 담겼는지 확인하는 검수 절차를 AI 스캐너에게 맡긴다. 상품의 앞뒤·측면까지 다각도의 이미지를 익힌 덕분에 찌그러진 상품도 0.1초 만에 인식 가능하다.

LG CNS가 상용화를 앞둔 AI시스템은 기계가 테트리스 게임을 하듯 네모난 상품들을 박스 한 개에 최대로 담을 수 있다. 이 시스템이 장착된 로봇팔은 상품의 넓이, 부피 등을 따져 물건을 꾹꾹 눌러 담아 박스 사용 갯수를 줄인다.

◇AI 물류 로봇 대여 사업도 꿈틀

국내 물류 현장에서 AI 시스템과 로봇 수요가 급증하면서 구독형 로봇 임대 서비스도 등장했다. 주문이 몰리는 성수기나 단기 공장 가동이 필요할 때만 자율주행 로봇이나 AI시스템을 빌려 쓰는 방식이다. 로봇자동화 플랫폼 기업 빅웨이브로보틱스와 KT는 로봇을 필요로 하는 기업과 로봇 임대 가능 기업을 연결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LG CNS는 자동화 창고 등을 포함해 물류기지 전반에 쓰이는 AI 시스템과 기기 전부를 세팅해주고 대여료를 받는 구독 서비스를 내놓을 계획이다. 미국의 물류 로봇 전문기업 인비아 로보틱스와 로커스 로보틱스가 주력하는 자율주행 로봇 대여 사업은 별도 인프라 투자가 필요 없어 중견·중소 업체들도 많이 이용한다. 물류 업계 관계자는 “물류 현장에서 차량에서 짐을 내리고 싣는 것은 아직도 인력에 의존하고 있지만 이 상하차 분야에서도 로봇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