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항공, 인공지능(AI), 바이오, 에너지, 방산 등 한국이 ‘미래 먹거리’로 꼽는 핵심 산업의 기술 경쟁력이 중국에 추월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가 국가의 새 성장 동력으로 삼은 미래 기술 분야에서 중국이 한국을 추월한 것은 물론, 격차를 더 벌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 창안자동차와 인터넷 검색업체 바이두가 공동개발한 무인 자율 주행차가 지난 2020년 베이징모터쇼에 등장했다./바이두

25일 본지가 윤석열 정부의 ‘7대 미래 먹거리 산업’의 한·중 기술 경쟁력을 분석한 결과, 에너지·방산·우주항공·바이오·인공지능 등 다섯 분야의 기술 경쟁력이 중국에 평균 1.2년가량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 격차가 가장 큰 분야는 우주항공 분야로 양국 격차는 3.5년이었다. 이어 방산은 1.7년, 인공지능 0.5년, 에너지 0.2년, 바이오 0.1년이었다. 한국이 앞선 것은 탄소 중립 대응(환경·기상), 스마트 농업 등 둘뿐이었다. 각각 0.9년, 2년을 중국에 앞섰다.

7대 미래 먹거리 산업은 지난 4월 안철수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발표했다. 이를 정부 산하기관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이 작년과 올해 각각 발표한 국가별 기술 수준 평가 보고서(2020년 기준)에 기반해 한·중간 기술 격차를 분석했다.

중국은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미국의 견제에도 막대한 인재 풀과 거대한 내수 시장, 대대적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매년 기술력을 빠르게 성장시키고 있다. 에너지와 바이오 분야는 2018년만 해도 한국의 기술력이 중국을 앞서거나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2년 만에 모두 역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청와대 경제과학특보를 지낸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는 “산업 선진국이 100년 걸릴 것을 중국은 거대 시장에서 10년 만에 10배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급성장하고 있다”며 “한국은 지금까지 선진국의 개념 설계를 받아 와 생산했지만, 앞으로는 중국에서 설계도를 받아 와 생산한 뒤 다시 중국에 납품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IT 강국 코리아를 자부했던 ICT(정보통신기술)에서도 중국이 한국을 추월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올 1월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AI·자율주행차·클라우드·빅데이터·블록체인 등 18대 ICT 중점 분야 기술 전반에서 한국의 기술력은 중국에 0.3년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양자 정보통신(1.5년), 자율주행차(0.7년), 인공지능(0.5년), 빅데이터(0.5년), 지능형 반도체(0.4년), 차세대 보안(0.4년) 등의 분야에선 평균보다 격차가 더 컸다. 평가 대상 5국(미국·유럽·한국·중국·일본)의 기술 수준은 선도국 미국을 100으로 봤을 때 유럽(93.3), 중국(91.5), 한국(88.6), 일본(88.4) 순이었다. 중국이 한국을 처음 추월한 것은 2018년으로, 당시 0.2년이었던 기술 격차는 0.3년으로 벌어졌다.

과학기술 전문가들은 중국의 선전(善戰)이 단순한 기술력 추월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진단한다.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중국의 기술력이 올라가고,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는 이면(裏面)에서 ‘중국식 표준’이 점차 ‘세계 표준’이 되고 있음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것은 CATL이나 BYD 같은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확산시킨 리튬인산철 각형 배터리다. 각형 배터리는 국내 업체들이 주력으로 하는 파우치형 배터리보다 기술 수준이 한 단계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중국이 에너지 효율을 크게 향상시키면서 지금은 폴크스바겐·현대차·벤츠 등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대부분 채택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원자재에서 배터리 생산, 전기차 제조까지 전 과정에서 중국이 글로벌 영향력을 계속 확대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전문가인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은 “한국이 중국 대비 기술력에서 뒤처진 부문은 있으나 응용 기술 분야의 강점, 첨단 신산업 분야의 테스트 마켓으로서 경쟁력을 잘 살려 세계와 연계한 성장 전략을 짜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