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중국의 수퍼컴퓨터를 비롯한 ‘고성능 컴퓨팅(HPC)’에 대한 기술 수출 제한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4일 전해지자, 국내 반도체 업계는 구체적 규제 범위와 그에 따른 파장을 점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1년 4월 12일 백악관에서 반도체·자동차·테크 기업 경영진과 화상 회의를 하며 반도체 핵심 소재 실리콘 웨이퍼(둥근 원판)를 손에 들고 있다.

고성능 컴퓨팅은 1초에 경(京·1조의 1만배) 단위의 연산을 처리하는 수퍼컴퓨터와 기업 데이터센터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고성능 서버(대형 컴퓨터)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미 뉴욕타임스는 미 정부의 규제 배경에 대해 “중국의 많은 대학, 국영 기업, 인터넷 기업들이 다양한 능력을 갖춘 수퍼컴퓨터를 운용하고 있다”며 “이는 도로 교통 분석, 날씨 예측뿐 아니라 소수민족 감시 등 악의적 목적으로도 쓰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미 정부의 구체적 규제안이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수퍼컴퓨터만을 겨냥한 조치라면 국내 반도체 업계에 미칠 여파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수퍼컴퓨터의 두뇌로 활용되는 CPU(중앙처리장치), GPU(그래픽처리장치) 시장은 인텔, AMD, 엔비디아 같은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정부는 이미 지난달 엔비디아와 AMD에 인공지능(AI) 연산, 수퍼컴퓨터용 GPU의 중국 수출 금지 명령을 내린 바 있다. 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CPU·GPU 시장에선 존재감이 크지 않고, 수퍼 컴퓨터에 들어가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도 제한적이다.

미국이 대만 TSMC와 삼성전자에 중국 수퍼컴퓨터용 반도체의 위탁 생산을 금지할 가능성도 있다. 국내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수퍼컴퓨터는 특화된 시장으로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규제가 수퍼컴퓨터로 제한될 경우 국내 업계에 미치는 여파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고성능 서버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면, 중국 대형 기업을 고객으로 둔 국내 반도체 업계는 상당한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D램·낸드플래시와 같은 메모리 반도체 상당수가 중국 인터넷 기업의 서버용으로 납품되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구체적 범위가 나와야 하겠지만, 중국 고성능 서버 시장까지 규제 대상으로 포함된다면 한국 반도체 기업뿐 아니라 세계 반도체 시장에도 큰 타격이 될 것”이라며 “미국이 과거 화웨이를 고사시켰던 것처럼, 알리바바·바이두 등 중국의 주요 인터넷 기업들에는 치명적인 제재가 될 수 있다”고 했다.